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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39

나는 친정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 운전기사 작년에 아파트 건설회사에 수용된 우리 동네는 교통이 엄청 불편한 동네였다.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인 2,3년 전 까지도 마을에 들어오는 버스는 하루에 한 시간 간격으로 8번 정도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친정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던 20년 전에는 시내에 나가려면 큰길까지 15분 이상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야 했다. 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아침에 등교시켜 주었고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가서 공부한 후 집에 태워다 주었다. 나는 큰길로 15분을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회사에 다녀야 했다. 그렇게 회사를 일 년 다닌 후 중고차를 구입해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친정엄마의 운전기사이자 동네 아주머니의 운전기사가 되었다. 친정엄마 운전기사 친정.. 2021. 4. 25.
코로나 19 상황 속 노인전문 병원의 '비대면 면회'와 '접촉 면회' 코로나 19 상황 속에 친정엄마는 작년 11월 중순부터 일주일에 3번씩 통원으로 4년간 신장 투석을 다니던 노인전문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고 계시다. 처음 병원에 입원하시고 2주 정도는 상태가 안 좋으셔서 거의 전화도 안 받으셨고, 간호사실에 연락을 해서 친정엄마의 상태를 물어보면 거의 눈만 감고 계시다고 했었다. 입원 후 12월 첫 주에 비대면 면회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노인전문 병원의 '비대면 면회'는 사전에 전화로 예약을 해야만 가능하고 한 달에 1회밖에 안된다. 그리고 예약이 미리 다 차있으면 면회신청을 할 수가 없다. 병원에 도착하자 병원 현관 입구에서 면회 참석자 개인별로 방문 기록지에 신상을 기록하고 열체크와 손 소독을 하게 했다. 병원 현관 밖 오른쪽에 면회실이 조립식 건물로 설치되어있는.. 2021. 4. 19.
친정엄마의 남동생에 대한 남다른 애정 친정엄마가 스스로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하신지도 어느새 5개월이 되어간다. 노인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싫어하시던 분이 "얼마나 힘드시면 스스로 입원을 결정했을까?" 하는 생각에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그때는 노인들이 겨울이면 컨디션이 떨어질 수 있으니 날이 따뜻해지면 컨디션이 나아지셔서 전처럼 집에 오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꽃도 피고 산과 들이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으로 변해 가는데 엄마의 컨디션이 회복될 기미가 없다. 외삼촌의 안부 전화 오늘 외삼촌이 엄마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셨다. 엄마의 상태를 아는 대로 전해 드리니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신다. 말씀은 잘 못하셔도 듣기는 하시고, 컨디션이 좋으실 때는 대화도 가능하니 직접 전화해보시라고 말씀드렸다. 외삼촌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2021. 4. 12.
친정엄마의 아파트 생활 적응기 아파트로 이사하게된 친정엄마 친정엄마는 작년 1월에 결혼하시고 60년 가까이 살았던 집에서 동네 뒤에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동네 전체가 아파트 단지로 수용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동네분들 중 일부는 아직 농사를 짓고 있어서 농사짓는 땅에 집을 지어 이사를 했고, 일부는 건설회사에서 대토로 주는 곳에 집을 지어 가기로 했다. 우리를 포함한 일부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동네 전체가 수용되자 남동생은 친정엄마에게 동생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자고 제안을 했다. 친정엄마는 아들 며느리와 살았던 적이 없었는데 이제와서 병들어 불편한 몸으로 함께 살기 싫다고 하셨다. 또 동네분들이 근처에 다 살게 되었으니 마을에서 멀리 떠나기 싫다고 했다. 결국 친정엄마와 나는 같은 .. 2021. 4. 6.
친정엄마와 거리두기로 얻은 것 암 전문 요양병원에서 3개월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친정엄마의 얼굴이 많이 야위어 있었다. 막상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3개월 떨어져 지내면서 친정엄마가 왜 그렇게 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그러면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고, 엄마를 대하는 태도 중 내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친정엄마를 위한다는 핑계로 한 잘못들친정엄마가 일을 무리하게 하고 나면 저혈당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이 많았었다. 그러다 보니 친정엄마가 일을 하려고 하면 무조건 못하게 내가 말렸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 짜증을 냈다. 다쳐서 또 병원에 가고 싶으냐고 했다. 음식을 짜거나 맵게 먹지 못하게 하고, 커피믹스에 설탕 추가하는 것도 못하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 2021. 4. 2.
친정엄마의 화상과 고관절 골절 두발에 3도 화상을 입어 두 달간 입원 치료를 했던 친정엄마는 퇴원 후 한 달 만에 심정지가 와서 심폐소생술로 겨우 살아나셨다. 그 이후로 일주일에 3회씩 신장투석을 하게 되었다. 심폐소생술을 한 병원에서 입원해 계시던 친정엄마는 한 달 후 집 근처에 있는 노인전문병원으로 전원을 해서 두 달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았고 그 후로는 퇴원해서 집에서 생활하시면서 통원으로 신장 투석을 받고 계시다. 암 전문 요양병원에서 요양을 하다.신장투석을 받으면서 친정엄마는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 대상자가 되어서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친정엄마와 요양보호사가 서로 익숙해졌을 때 나는 한방과 양방을 겸한 전남 영암에 있는 암 전문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암 전문 요양병원에 입원해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1박 2일.. 2021. 3. 26.
친정엄마와 나는 애증의 관계2 오늘 나를 제외한 두동생과 올케 그리고 남편이 친정엄마가 입원 중이신 노인요양병원에 면회를 다녀왔다. 코로나 19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며 작년 12월 첫째 주 이후 금지되었던 노인요양병원의 비대면 면회가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노인요양병원 입원 후 고관절 골절과 코피 과다출혈로 응급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던 친정엄마는 남편 말에 의하면 많이 좋아지셨다고 한다. 나의 암 요양병원 생활 5년 전 집을 떠나 암 전문 요양병원에서 생활을 하며 처음 항암치료를 할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항암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딸 때문에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암 요양병원에서 매주 한 번씩 교회에 다니는 암환우들의 모임에 참석해서 함께 찬양도 부르고 성경도 읽으면서 각자의 기도제목을 내어 함께 기도도 했다. 하루는 같.. 2021. 3. 21.
친정엄마와 나의 관계에 영향을 준 딸 딸의 극진한 간호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할 때부터 항암치료를 하는 모든 기간 동안에 딸은 온 정성을 다해 나를 간호를 했다. 딸의 간호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너처럼 외할머니 간호를 한 적이 없다. 우리 딸은 어쩌면 내 간호를 이렇게 잘하니?"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가족들도 딸아이의 간호하는 모습에 감탄을 했었다. 후에 딸은 그때 간호한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단 적이 있다. 친정 엄마로부터 대물림하는 딸을 대하는 태도 친정엄마처럼 나도 맏며느리로 시집을 갔다. 시부모님과 두 명의 시동생들과 함께 살았는데 시어머님은 식구들이 원하는 시간에 밥을 주라고 했다. 나를 제외한 5명의 식구가 다 각자의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밥을 먹었기에 하루에 밥상을 10번을 넘게 차.. 2021. 3. 18.
친정엄마와 나는 애증의 관계 1 친정엄마의 안쓰러운 모습지금의 친정엄마를 바라볼 때 엄마에게 서운했던 마음은 다 없어졌고 안타깝고 애잔한 마음만 남아 있다. 친정엄마의 남은 삶이 몸과 마음이 평안한 삶 되시길 간절히 기도하며 엄마를 대하는 나의 마음에 변화를 주신 분께 감사하고 있다. 친정엄마의 사랑이 고팠던 나엄마는 활달한 성격에 무엇이든 거침없이 잘하시는 분이었는데 어릴 적 나는 밖에 나가서 친구들하고 뛰어노는 것보다는 동화책 보는 것을 좋아했다. 친정엄마는 남들이 보는 시선과 평가가 중요한 분이었고 내가 무엇이든 잘하기를 바라셨는데 나는 그 기대에 늘 못 미쳤다. 그리고 대가족이다 보니 엄마는 늘 분주하고 바빴다. 그런 엄마 품에 안기려 하다 귀찮다며 밀침을 당하기도 했고 밤에 아파 징징거리다가 혼이 난적도 있었다. 그 후로는 엄.. 2021. 3. 15.
친정엄마가 내게 쏟았던 열정 친정엄마는 내가 객관적 시각으로 봐도 상당한 미인이셨다. 눈 화장을 하지 않아도 짙은 검은 눈썹과 쌍꺼풀진 눈, 오뚝한 코, 도톰한 입술에 시원시원한 얼굴이셨다. 아버지도 인물이 좋으신 편이었는데 친정엄마는 외모를 중시하는 분이었기에 맞선을 보고 잘생긴 아버지가 마음에 들어 결혼하신 거라고 했다. 못생긴 딸이 창피했던 친정엄마 친정엄마의 표현에 의하면 내가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 쌍꺼풀도 없고 코는 들창코에 아랫볼이 살이 찌고 이마는 좁아 마치 못생긴 참외 같았다고 했다. 너무 못생겨서 자신이 낳은 것 같지 않았고 친정에 나를 데리고 가야 하는데 창피해서 가장 예쁜 옷을 입히고 최대한 얼굴이 안 보이게 모자도 씌워 데리고 가셨다고 한다. 친정동네 어른들이 나를 보고는 예쁘다는 말은 안 하고 "귀엽네 "하고.. 2021.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