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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친정엄마와 나의 관계에 영향을 준 딸

by 토끼랑께 2021. 3. 18.

딸의 극진한 간호

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할 때부터 항암치료를 하는 모든 기간 동안에 딸은 온 정성을 다해 나를 간호를 했다. 딸의 간호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너처럼 외할머니 간호를 한 적이 없다. 우리 딸은 어쩌면 내 간호를 이렇게 잘하니?"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가족들도 딸아이의 간호하는 모습에 감탄을 했었다. 후에 딸은 그때 간호한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단 적이 있다.

제주 신라호텔

친정 엄마로부터 대물림하는 딸을 대하는 태도

친정엄마처럼 나도 맏며느리로 시집을 갔다. 시부모님과 두 명의 시동생들과 함께 살았는데 시어머님은 식구들이 원하는 시간에 밥을 주라고 했다. 나를 제외한 5명의 식구가 다 각자의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밥을 먹었기에 하루에 밥상을 10번을 넘게 차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결혼 5년 차에는 큰 시동생이 결혼을 하면서 동서까지 한집에서 일 년을 함께 살았다. 시어머님은 매 끼니 다양한 음식을 반복되지 않게 차리길 원하셨고 나는 부엌일로 하루가 다 가버리고는 했다.

어느 날 딸을 야단을 치다가 문득 나의 모습이 딸을 훈계하는 것이 아니고, 딸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간 내가 어려서 친정엄마한테 혼났던 생각이 났고, 나는 어린 딸을 붙잡고 울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딸을 대할 때 아이가 상처 받지 않게 하려고 많은 신경을 쓰며 키웠다. 딸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는 아이였고 워낙 섬세한 성격이어서 딸을 키우면서 갈등이 있던 때도 있었지만 무슨 일이든 내게 다 말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딸아이도 무슨 일이든 내게 다 이야기를 했다. 딸과 나는 자주 차도 마시고 여행도 다녔다. 딸과 다정하게 지내면서 친정엄마와는 그렇지 못한 것이 늘 마음 한구석에 걸렸지만 또 뿌리침을 당할까 봐 내가 먼저 엄마에게 다가가기는 두려웠다.

제주 해변

제주도 여행지에서 딸의 소원

대장암 수술 후 12번의 항암을 마친 나는 12월 초에 정기검사를 앞두고 딸과 둘이서 제주도로 2박 3일 여행을 갔다. 딸은 어려서부터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잘하던 아이인데 내가 아프고 나니 더욱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했고 자주 포옹을 한다. 2일째 되는 날 저녁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와인파티에 참석을 했다.

제주 신라호텔 와인파티

딸과 둘이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마시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때 딸이 내게 "엄마 내가 엄마 너무 사랑하는 거 알지? 나는 엄마가 내 엄마여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 나는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이고 싶어. 그런데 엄마 나중에 내가 간 그곳에 엄마가 없으면 나는 너무 슬플 것 같아." 딸은 내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엄마가 꼭 들어줬으면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딸아이의 소원이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싶었다. " 엄마 나랑 교회에 한 번만 꼭 나가 줘~" 나는 망설이지 않고 "내 딸이 소원이라는데, 그래 내가 한번 나가볼게."라고 말했고 딸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제주 해변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교회에 갔던 나

나는 15년이 넘게 절에 다니고 있었다. 딸아이는 대학 2년을 마치고 호주에 어학연수를 일 년 다녀왔는데 올 때 기독교로 개종을 해서 왔다. 그런 딸이 못마땅했지만 딸의 인생이니 서로가 종교에 대한 예의를 갖추자는 조건하에 교회에 다니는 것을 허락했었다. 딸은 내가 대장암에 걸리자 기도를 하면서도 나에게 교회에 나가자는 말을 그동안 하지 못했었는데 여행길에서 그렇게 처음으로 내게 말을 꺼냈던 거였다.

딸을 따라 처음 교회를 갔던 날 모든 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내가 처음 방문한 것을 알고 일어서게 하고는 모든 사람이 우리를 향해 두 손을 펴서 내밀고 찬양을 부르는데 딸이 눈물을 흘렸다. 끝나고 어떤 분이 밥을 먹고 가라면서 우리 때문에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해가 되질 않아 딸의 손을 잡고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정말 딸이 소원이라니 가기는 했어도 마음이 불편했었다.

제주신라호텔 산책로

딸의 눈물의 기도

그 후 다시 교회를 가지 않은 채 며칠이 지났다. 하루는  찜질방에서 교회에 다니는 분들을 만났는데 내가 먼저 말을 걸어 "교회 다니는 분들은 자신들이나 다니면 되지 왜 그렇게 다른 사람들까지 다니라고 권하나요?"라는 질문을 했다. 그리고 딸이 나를 교회에 데리고 갔던 이야기를 했다. 나는 교회 가기가 싫은데 딸이 원해서 마음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분이 눈물을 흘리면서 "따님이 엄마를 위해 얼마나 울면서 기도를 할까요."라고 했다. 순간 울고 있을 딸의 얼굴이 떠올랐고 마음이 아팠다. 그 주에 나는 정기검사를 위해 병원 진료를 받았는데  폐에 전이된 종양이 커지고 종양수가 늘어나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딸은 이제는 정말 내가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엄마 이제 나 말리지 마!"라고 선언을 한 후 딸 회사분들을 동원해 내가 폐 수술을 하러 들어간 날부터 퇴원하는 날까지 8일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다른 사람들이 내게 와서 기도를 하게 했다. 그리고 나의 수술하는 시간 동안 딸이 다니는 교회분들이 릴레이 기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가 잘못될까 봐 저리도 동동거리며 애를 쓰는 딸을 보면서 결심을 했다. "그래 내가 교회에 가서 세례를 받은 후에 죽으면 딸아이가 안심하겠지? 내가 딸을 위해서라도 일단은 교회에 나가서 세례를 받자."하고 생각했다.

교회 찾기

딸은 서울에서 교회를 다녔었고 나는 평택에 살았기에 집에서 가까운 교회 3곳을 4번 정도 돌아가며 예배에 참석을 해보았다. 그중 한 교회에 갔을 때 교회 분위기가 무겁지 않으면서 조용했고 성도들의 표정이 온화해 보였다.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이미지하고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고 두 번째 방문을 했을 때 딸은 서둘러 새 가족 등록을 하게 했다. 그렇게 나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나님 바로 알기

나는 교회에 다니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기왕 다닐 거면 바로 알고 다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다. 사복음서를 먼저 읽은 후 신약 필사를 시작했고 구약을 읽기 시작했다. 알 수 없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새 신자 교육시간에 전도사님에게 질문을 했다. 그래도 성경은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찬양을 들을 때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고 모든 게 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후로는 멜론에서 찬양곡을 찾아 걷기 운동을 할 때 들으면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감사했던 일이 많았다. 처음 입원했던 암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간호과장님이 가끔 병실에 오면 창세기 이야기를 해주는데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듯이 편하고 알기 쉽게 들려주었다. 너무 재미있어 이야기 해준 부분을 간호과장님이 나간 후 다시 찾아 읽어보기도 했다. 입원한 지 한 달 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봉사활동으로 찾아오시던 권사님이 계셨다. 그분은 매주 하루씩 와서 암환우들과 성경말씀을 읽고 서로의 기도제목을 공유하며 기도와 찬양을 했다. 그분을 통해 기도하는 법을 배웠고 감사노트를 쓰게 되었다.

엄마를 위한 기도

나도 아침에 눈을 뜨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딸의 나에 대한 사랑을 생각하며, 나도 친정엄마를 위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점점 건강이 안 좋아지는 엄마가 안쓰러웠고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힘들었을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딸과 다정하게 여행을 하고 애정을 나누는 것처럼 친정엄마와도 애정을 표현하고 나누며 살고 싶었다. 엄마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어려서 거절을 당했던 기억 때문에 또 거절을 당하면 마음에 상처만 남을까 봐 다가가지 못하는 나에게 용기를 달라는 기도를 매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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