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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친정엄마의 남동생에 대한 남다른 애정

by 토끼랑께 2021. 4. 12.

친정엄마가 스스로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하신지도 어느새 5개월이 되어간다. 노인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싫어하시던 분이 "얼마나 힘드시면 스스로 입원을 결정했을까?" 하는 생각에 더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그때는 노인들이 겨울이면  컨디션이 떨어질 수 있으니 날이 따뜻해지면 컨디션이 나아지셔서 전처럼 집에 오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 꽃도 피고 산과 들이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으로 변해 가는데 엄마의 컨디션이 회복될 기미가 없다.

영랑생가 연산홍

외삼촌의 안부 전화

오늘 외삼촌이 엄마 안부를 묻는 전화를 하셨다. 엄마의 상태를 아는 대로 전해 드리니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신다. 말씀은 잘 못하셔도 듣기는 하시고, 컨디션이 좋으실 때는 대화도 가능하니 직접 전화해보시라고 말씀드렸다. 외삼촌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실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엄마에게는 외삼촌이 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랑생가 목련

친정엄마에게는 자식 같은 남동생

외삼촌은 6.25 전쟁이 일어나던 날 태어나셨다. 전쟁 중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리셨던 외할머니를 대신해서 엄마는 12살 아래인 동생을 업고 학교에 다녔고, 자꾸 밖으로만 나가시는 외할머니를 찾아와 외삼촌에게 젖을 먹이게 했다고 한다. 학교에 갈 때면 외삼촌을 업고 갔는데, 수업시간에 등에서 울며 보채는 외삼촌 때문에 엄마는 결국 초등학교 졸업을 못하셨다고 한다. 그런데도 살면서 한 번도 외삼촌 때문에 공부를 계속 못한 것을 한탄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릴 적에 외삼촌이 교복을 입고 우리 집에 자주 찾아왔던 기억이 있다. 엄마 같은 누나가 보고 싶어서였나 보다. 엄마는 여름에 외삼촌이 교복을 입고 왔는데 목이 시커멓고 땟물이 흘러 시댁 식구들 볼까 봐 바로 우물가로 끌고 가 씻겼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외삼촌은 어려서부터 농구를 잘해서 대학교 농구부 주장까지 했었다. 외삼촌은 같은 대학에서 운동하는 외숙모와 연애를 했는데 , 결혼하고 싶다며 함께 와서 엄마에게 인사를 시켰다. 운동하는 외숙모는 체격이 엄청 컸는데 엄마는 맘에 들지 않아 하셨다. 엄마는 집에서 살림만 하면서 외삼촌을 챙겨줄 여자이길 바라셨다고 한다.

외삼촌은 엄마에게 인사시켰던 외숙모와 결국 결혼을 했고, 친정엄마는 동생이 손해 보는 결혼을 했다며 마땅치 않아했었다. 성격 좋은 외숙모는 엄마의 그런 모습을 대할 때면 껄껄 웃으면서 "누님 다른 사람들은 다 제가 손해라고 합니다." 한다. 외숙모는 엄마에게 '형님'이라는 호칭 대신 '누님'이라고 말했었다. 체격이 좋은 외숙모가 엄마에게 '형님'이라고 해도 역시 남자 느낌이었을 것 같다.

영랑생가 목련

아버지를 정성껏 간호했던 외삼촌

아버지는 49살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셨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뇌출혈로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으로 40일을 넘게 계셨고 중환자실에서 3개월 그리고 일반병실에서 8개월을 입원해 계셨었다. 외삼촌은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의식 없이 입원해 있을 때부터 1년 동안 주말이면 찾아와 엄마와 교대로 아버지를 간호했다. 아버지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오래 있으면 몸의 근육이 빠지고 굳어진다고 올 때마다 전신 마사지를 해주었는데 마사지를 해주고 나오는 외삼촌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고 한다.

목련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했던 외삼촌

사고로 뇌손상을 입은 아버지는 언어장애로 돌아가실 때까지 말씀을 못하셨고, 약간의 지적장애도 있으셨다.  아버지는 퇴원 후 3년 만에 급성폐렴으로 돌아가셨다.  외삼촌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내내 묵묵히 엄마 뒤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외삼촌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에 애경사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자리에 참석했다. 나는 아버지가 사고 당하시기 일 년 전에 결혼을 해서 아버지가 손도 잡아주고 함께 해주었지만 두 동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결혼을 해서 빈자리가 컸을 텐데 외삼촌이 대신해 주셔서 큰 힘이 되었다.

영랑생가 목련

외할머니를 대신에 외삼촌을 챙기는 친정엄마

외할머니가 연세가 드시면서 음식 맛이 자꾸 짜고 달기만 해서 먹기 힘들다는 외삼촌의 말에 친정엄마는 외삼촌댁 김치와 김장을 담아주기 시작했다. 김장김치는 물론 간장, 고추장, 된장, 청국장 그리고 곡식까지 엄마는 외삼촌을 자식처럼 챙겼다. 김장 때가 되면 외삼촌과 외숙모는 김치통을 챙겨 갖고 와서 김장을 함께 하고 김장이 끝나면 엄마에게 용돈을 넉넉히 드리고 김장김치와 곡식을 챙겨 갔다. 외숙모도 성격이 너무 좋으신 분이라 더러 엄마가 심한 말을 해도 껄껄 웃어넘기고는 하셨다. 엄마는 세월이 흘러도 외삼촌이 아깝기만 하다고 한다. 우리가 볼 때는 외숙모처럼 좋은 분이 없는데도 말이다.

영랑생가 시비(모란이 피기까지는)

친정엄마와 외삼촌의 서로를 향한 애정

엄마가 건강이 나빠지면서 수술을 거듭하자 외삼촌은 몸에 좋다는 약을 챙겨 와 엄마가 드시게 했고, 늘 엄마의 건강과 안부를 챙겼다. 엄마 또한 몸이 불편하면서도 몇 년 전까지 외삼촌댁 김장까지 챙기셨다. 친정엄마와 외삼촌을 보면 형제 이상으로 끈끈한 정이 있다. 외삼촌도 나이가 드시면 아픈 곳이 많아져서 자주 오시지는 못하지만 엄마를 염려하는 마음은 변함없으신 듯하다.

거듭되는 수술과 입원 끝에 엄마가 결국 노인요양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외삼촌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마음 아파하셨다. 궁금해서 전화를 하셨겠지만 제대로 대답도 못하는 엄마 목소리를 듣는 외삼촌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아들 같은 남동생의 전화를 받고도 말할 기운 조차 없는 엄마는 또 얼마나 맘이 아프셨을까? 두 분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영랑생가 목련

 

나이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사는 날 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으니 내일은 친정엄마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어 병원에 갖다가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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