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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친정엄마의 화상과 고관절 골절

by 토끼랑께 2021. 3. 26.

두발에 3도 화상을 입어 두 달간 입원 치료를 했던 친정엄마는 퇴원 후 한 달 만에 심정지가 와서 심폐소생술로 겨우 살아나셨다. 그 이후로 일주일에 3회씩 신장투석을 하게 되었다. 심폐소생술을 한 병원에서 입원해 계시던 친정엄마는 한 달 후 집 근처에 있는 노인전문병원으로 전원을 해서 두 달 정도 입원 치료를 받았고 그 후로는 퇴원해서 집에서 생활하시면서 통원으로 신장 투석을 받고 계시다.

 

진달래

 

암 전문 요양병원에서 요양을 하다.

신장투석을 받으면서 친정엄마는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 대상자가 되어서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게 되었다. 친정엄마와 요양보호사가 서로 익숙해졌을 때 나는 한방과 양방을 겸한 전남 영암에 있는 암 전문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암 전문 요양병원에 입원해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1박 2일로 집에 와서 친정엄마와 가족들이 먹을 밑반찬과 이불빨래를 하고 다시 입원을 했었는데 집에 하루 다녀오면 2~3일은 꼼짝 못 하고 앓아누웠다.

 

유채꽃

 

우리 집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놀이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친정엄마가 몸이 불편해 마실을 나가지 못하면서, 우리 집이 동네 아주머니들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직장에 다닐 때에는 엄마가 심심하시지 않게 마실 와주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고마워서 친정엄마방에 빵, 과자, 과일 등 간식을 항상 비치해 놓았다. 마실 오면 먹을 간식이라도 풍족해야 자주 오실 것 같아서였다. 친정엄마는 아주머니들하고 겨울이면 김치만두를 만들고, 봄이면 쑥개떡을 만들고, 추석 때는 송편을 만드신다. 비 오는 날이면 모여서 부침개를 하기도 하는데 아침에 마실을 오면 저녁까지 드시고 가는 분도 계시다. 친정엄마의 이 생활은 내가 암에 걸려서 집에 있어도 계속되었다.

 

유채꽃

 

친정엄마의 심부름

암 요양병원 생활을 2개월 넘게 하며 체질 식이 익숙해지자 나는 친정엄마와 다른 가족들이 염려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혈색이 좋아져서 온 나를 본 친정엄마는 이제 다 낳았다고 생각을 하시는 거 같았다. 동네 아주머니에게 쑥을 베어 오게 해서 다듬고 씻어 새파랗게 삶아놓고, 쌀을 씻어 담그시더니 내게 방앗간에 갖고 가 떡을 해오라고 하신다. 나는 떡방앗간에 가서 반은 떡가루로 빻아오고 나머지 반은 쑥설기를 해갖고 왔다. 떡을 해서 집에 도착하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실 와 있다가 쑥떡을 나눠먹으며 이야기꽃이 핀다. 그리고 며칠 후 쑥가루를 반죽해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모여 쑥개떡을 만들어 드신다.

 

 

친정엄마 건강을 위한 식이요법 시도

친정엄마는 육류를 거의 드시지 않는다 건강을 위해 드셨으면 하는데 우리가 권유하면 "싫어!"라고 말 한마디 하고는 절대로 드시지 않는다. 친정엄마가 신장투석을 시작한 후로는 음식을 싱겁게 해 드리는데, 밥을 먹을 때면 차려진 음식을 둘러보고는 맘에 안 드는 음식을 그릇째 내 앞으로 밀어버린다. 친정엄마에게 식이요법을 하셔야 한다고 설명하면 더 살고 싶은 맘 없다며 왜 심장 멎었을 때 죽게 두지 살려놓았느냐고 한다.

 

벚꽃

 

그리고 맨밥에 물을 부어서 김치 국물하고 밥을 먹거나, 고추장에 비벼서 먹는다. 어쩔 수 없이 친정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만들어 드리는데 그렇게 해도 하루에 한두 번씩은 음식을 먹는 거로 신경전을 벌인다. 집에 돌아온 후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도 친정엄마와 잘 지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고 나갔다. 그래야  친정엄마와 부딪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나는 친정엄마의 건강을 염려한다는 이유로 내가 친정엄마에게 지나친 간섭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나는 나대로 힘에 겨운 날들을 보냈다.

 

왕벚꽃

 

대상포진으로 인한 암 전문 요양병원 입원

그렇게 2개월을 생활하니 친정엄마는 얼굴이 좋아지셨는데 나는 대상포진이 걸렸고 남편은 나를 다시 암 전문 요양병원에 입원을 하게 했다. 지난번에 팔 체질검사로 내 체질을 알았기에 병원 주변 환경이 좋은 담양에 있는 암 전문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얌 요양병원에 입원해서 휴식을 취하며 면역력 올리는 치료를 3개월 정도 받고 나니, 몸 컨디션이 좋아졌고 친정엄마와 가족들 걱정되어 퇴원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퇴원하던 날, 친정엄마는 추석에 송편을 한다며 앞마당에 있는 소나무에서 솔잎을 따고 돌아서다 넘어지셔서 응급실에 실려가셨다. ㅠㅠ

 

벚꽃

 

친정엄마의 고관절 골절로 인한 인공고관절 수술

12년간을 친정엄마는 당뇨합병증과 혈압, 관절염 그리고 추간판 탈출증으로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며 살아오셨다. 심장박동기를 달고 난 후로는 추석명절 음식을 무리하게 하고 나서, 김장을 하느냐 무리를 하고, 번번이 저혈당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것도 여러 번이다. 결국은 몸에 무리한 일을 하면은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이번에 추석이 다가오니 솔잎을 따다 넘어지셨고, 고관절에 골절이 되어 인공관절로 고관절 교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 남동생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배꽃

 

신장투석까지 하고 있는 친정엄마의 수술은 담당의사 선생님에게도 큰 부담이었다. 수술을 하기 전 검사에서 빈혈 수치 때문에 혈액 수혈을 받고, 혈당조절을 한 후 친정엄마는 전신마취로 고관절 수술을 받게 되었다. 주변에서 모두가 고관절 수술을 받으면 몸이 약해져 일어나실 수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다행히 친정엄마는 수술을 잘 마쳤고 2주 만에 퇴원을 해서 재활치료를 위해  신장투석을 받고 있는 노인전문병원으로 전원을 했다.

 

복숭아 꽃

 

친정엄마의 노인전문병원 입원

나와 남동생은 친정엄마를 노인병원에 입원시키면서 회복이 되더라도 최소한 김장철이 지나고 난 후에 퇴원하시게 하자고 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추운 겨울에 통원으로 투석하러 다니다가 넘어질 수 있으니 봄에 따뜻해지면 퇴원하는 거로 하자고 했다.

 

 

드디어 김장철이 다가왔고 친정엄마는 집에 오겠다고 매일 남동생과 나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는 친정엄마가 김장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 김장은 각자 다 사 먹기로 했으니 그냥 병원에 편히 계시라고 했다. 남동생이 전화를 받지 않자 친정엄마는 내게 전화로 퇴원 안 시켜준다고 욕을 퍼부었다. 내가 대답을 안 하고 전화를 끊자 이번에는 이웃집에 사는 당숙모를 괴롭혔고 병원이 답답해서이지 김장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며 퇴원시켜달라고 했다. 나는 오죽 답답하면 저러실까 하는 마음에 김장은 안 하기로 약속하고 퇴원을 시켰다.

 

싸리꽃

 

친정엄마의 김장에 대한 집착

친정엄마는 퇴원을 해서 집에 오던 날 당숙모에게 총각무를 잔뜩 뽑아오게 했다. 친정엄마는 해마다 김장을 많이 해서 가족들은 물론 우편물 집배원이나 정수기 코디에게 까지 김장을 나누어 주고 봄이면 남은 김장이 많아 쏟아 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총각김치를 시작으로 동치미, 짠지. 파김치, 깍두기, 갓김치를 하고 나는 결국 몸살이 나서 앓아눕게 되었다.

 

 

나는 너무 힘이 들고 기운이 없어 "엄마! 나도 병원에 오래 입원해봐서 엄마 심정 알기에 퇴원시켰더니 김장 안 하기로 해놓고, 어쩌면 이렇게 나를 힘들게 만들어요."하고 넋두리를 했다. 그랬더니 친정엄마가 "니까짓 게 일을 얼마나 했다고 그래, 나는 다시 병원에 입원하기 싫으니 너나 다시 요양병원에 입원하면 될 거 아냐~" 하고 소리를 지른다. 친정엄마의 태도에 나의 인내심은 무너지고 말았고, 나 없이 김장 잘해보시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퇴원해서 또 다칠까 봐 염려하는 동생들을 설득해 퇴원을 시켜드린 그 마음을 몰라주는 것에 나는 더 서운했다. 결국 그날로 짐을 싸서 다시 암 전문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나는 일주일간은 말조차 할기운이 없어 밤낮으로 누워 꼼짝도 못 했다.

 

 

오직 말씀과 기도만이 나의 마음을 회복시켰다.

암 요양병원에서 다시 기운을 차리면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친정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친정엄마한테 서운했던 마음보다는 어릴 적 친정엄마가 내게 잘해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좋았던 기억을 떠오르게 하시어 내 마음을 회복시켜주심에 감사했다. 

 

 

암 요양병원에서의 치료로 몸이 회복되어 갔다. 말씀과 기도로 마음도 하루하루 회복되어 갔다. 그리고 친정엄마의 방식으로 나를 대하여서 내가 힘들었던 것처럼, 나도 더 이상 친정 엄마의 건강을 챙긴다는 이유로 내방식으로 친정엄마를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친정엄마와 나 사이에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집에 산다는 것이 서로를 위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입원한 지 3개월이 지나며 몸이 회복되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글의 모든 사진은 오늘 주변을 산책하며 찍은 사진입니다.^^ 전남 영암의 봄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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