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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나는 친정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 운전기사

by 토끼랑께 2021. 4. 25.

작년에 아파트 건설회사에 수용된 우리 동네는 교통이 엄청 불편한 동네였다.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인 2,3년 전 까지도 마을에 들어오는 버스는 하루에 한 시간 간격으로 8번 정도 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친정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던 20년 전에는 시내에 나가려면 큰길까지 15분 이상 걸어 나가서 버스를 타야 했다. 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아침에 등교시켜 주었고 수업이 끝나면 학원에 가서 공부한 후 집에 태워다 주었다. 나는 큰길로 15분을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회사에 다녀야 했다. 그렇게 회사를 일 년 다닌 후 중고차를 구입해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친정엄마의 운전기사이자 동네 아주머니의 운전기사가 되었다.

 

 

친정엄마 운전기사

친정엄마는 주말에 "나 내일 목욕 갈 건데 몇 시에 태워다 줄 거냐?"하고 물으신다. 다음 날 약속한 시간에 친정엄마를 태워다 드리려고 마당에 나와 보면 동네 아주머니들 몇 분이 옆집 사랑채 마루에 외출 준비를 하고 앉아 있다. 친정엄마는 이미 전날 아주머니들과 계획을 세워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목욕을 갈 때만이 아니었다. 시장을 보러 갈 때도 미장원에 갈 때도 항상 친정엄마는 혼자가 아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움직이신다. 어쩌다 친정엄마만 시내에 모셔다 드리고 오는 날도 있는데 태우러 오라는 시간에 약속 장소에 가보면 친정엄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 친정엄마가 이미 각자의 볼일로 나온 아주머니들에게 미리 시간과 장소를 약속해 놓은 거였다. 어떤 때는 사전에 약속이 없어도 내가 데리러 올 거니 같이 있다가 편하게 있자고 붙잡아 놓고 계신 것이었다.

 

경운기 사고로 다친 동네분 치료비를 보상해줬던 친정아버지

친정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장날이 되면 시내에 경운기를 운전하고 나갈 때가 있었다. 교통이 불편한 동네이다 보니 돌아오는 길에는 장을 보러 나왔던 동네 사람들이 경운기 뒷칸에 타고 들어오고는 했다. 한 번은 경운기가 비포장 동네길을 들어올 때 덜컹하면서 뒷칸에 앉았던 아주머니 한분이 경운기에서 도로로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허리가 아프다면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그 아주머니가 입원해 있는 동안 할머니가 가셔서 병간호까지 했고 우리가 치료비를 다 물어 줘야 했었다. 교통이 불편한 동네다 보니 친정아버지는 동네분들 편의를 봐주신 거였는데 사고가 나는 바람에 다친 분도 고생을 했지만 우리도 손해를 보게 되었다. 그 이후로 친정아버지는 다시는 동네분들을 경운기에 태워주지 않으셨다.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나는 친정엄마한테 동네분들은 안 태우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소용이 없었다.

 

마을까지 내려옴 고라니 새끼

맥반석 찜질방에 겨울 동안 다니신 친정엄마

어느 해 겨울에 친정엄마는 맥반석찜질방에 찜질을 하러 다니시게 되었다. 시내에 나갔다가 어떤 분이 무릎이고 어깨고 다 쑤시고 아팠는데 맥반석찜질방에 갔다 오면 하나도 아프지 않고 좋다고 했다며 집에서 차로 30분이 넘는 곳을 주말이면 가자고 했다. 첫날은 친정엄마와 나만 다녀왔는데 너무 좋으셨는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자랑을 하시더니 그다음 주부터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함께 태우고 가게 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함께 가기 시작하면서 친정엄마는 도시락까지 준비해 가기 시작했는데 무슨 소풍 가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들은 몇 시간을 찜질방에 있으면서 준비해 간 도시락과 간식을 다 먹고서야 집에 돌아온다. 직장에 다니는 나는 주말이면 집에서 좀 쉬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면 태워다 놓고 가고 몇 시까지 데리러 와" 하신다.  왕복 1시간이 넘으니 태워다 드리고 끝날 때쯤 모시러 가는 시간을 합치면 결국 2시간 이상을 운전을 해야 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 농사일이 시작되자 맥반석찜질방 가는 일은 끝났는데 2,3년간 겨울만 되면 반복되는 일이었다.

 

매일 병원을 출근했던 친정엄마

수술을 여러 번 한 후 집에 퇴원해서 지내고 계셨는데 하루는 원삼(집에서 그 당시 40분 거리)에 아주 용한 병원이 있다며 가자고 하셨다. 친정엄마 사촌 여동생이 다리가 아팠는데 그 병원에 가서 주사 한 대 맞으면 거짓말처럼 안 아프다며 친정엄마한테 가보라고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주사 한 번에 낫는 경우는 진통제일 테고 건강에 오히려 안 좋을 수 있다고 했더니 대답도 안 하신다. 결국 친정엄마하고 이모가 말한 병원을 찾아갔는데 병원 안에 나이 든 환자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데 환자가 너무 많아 2시간이 넘어 3시간이 거의 되어서야 진료를 받게 되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친정엄마는 정말 아프던 곳이 괜찮다며 다음날도 또 간다고 하신다. 나는 안 아프면 이젠 안 가면 되지 왜 내일 또 가냐고 하니 처음 며칠 동안은 계속 가야 효과가 좋다고 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아침에 마당에 나와보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옆집 마루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날부터 매일 친정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을 태우고 다니게 되었다. 승용차에 탈 수 있는 인원이 제한이 있다 보니 친정엄마는 매일 가셨지만 아주머니들은 교대로  2,3일에 한 번씩 가셨다. 하루는 비가 너무 쏟아지길래 내가 못 가겠다고 했다. 친정엄마만 태우고 간다면 가지만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가는 것은 위험해서 싫다고 했다. 그날은 내가 워낙 완강하게 말하니 친정엄마도 가만히 아무 말 않고 계셨다. 그런데 아랫집 아주머니가 우산을 쓰고 와서는 다리가 너무 아파 그러니 자꾸 가자고 했다. 그 아주머니는 아들 딸이 시내에 살고 있고, 아들이 승용차가 있는데도 내게 와서 그러시는 거였다. 나는 비가 와서 못 간다고 하고 내방으로 들어왔다.

 

대상포진 진단 후에야 안 가게 된 병원

그러던 어느 날 친정엄마는 어깨가 너무 아프다고 하시면서 빨리 원삼에 있는 병원에 가자고 하셨다. 나는 한 달이 넘게 매일 가서 주사 맞았는데 나아지지 않는 병원 그만 가고 시내에 큰 병원에 가자고 하니 그래도 거기 가야 덜 아픈데 알지도 못하고 그런다며 데려다 주기 싫으니 그런 소리를 한다며 화를 냈다. 어쩔 수 없이 원하는 대로 모시고 가서 어깨에 주사를 맞고 왔는데 그날 저녁에 친정엄마에게 저혈당 쇼크가 왔다. 나는 친정엄마가 식은땀을 흘리며 몸이 자꾸 늘어지는  것을 보고 저혈당이 오는 듯해 오렌지주스를 먹였다. 바로 119에 전화를 해서 구급차를 불렀는데 구급차가 도착했을 때에는 친정엄마는 의식을 잃고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검사를 시작하는데 다행히 엄마는 의식을 찾았다. 

친정엄마는 의사에게 어깨가 너무 아프다는 이야기를 했고, 검사 결과 어깨 통증은 대상포진이었다. 대상포진에 걸린 친정엄마는 진료받던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2주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말려도 다니시던 원삼에 있던 병원은 그 이후로 다니시지 않게 되었다.

 

말만 하면 태워다 주는 큰딸이 있다는 것이 자랑이었던 친정엄마

친정엄마는 그 이후로도 시내 나갈 때마다 동네 아주머니들을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으셨다.  하루는 뒷마당에 있다가 우연히 친정엄마가 동네 아주머니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주머니가 " 우리 000은 내가 좀 어디 태워다 달라면 바쁘다고 하고, 피곤하다고 하고, 나중에 가자 하며 잘 안태워다 줘~" 하고 말하시니 친정엄마는 " 우리 큰딸은 내가 말만 하면 다 태워다 주는데 왜들 그런데~" 하면서 큰 소리를 친다. 

친정엄마의 으스대는 그 소리를 들어 버린 나는 그 후로도 친정엄마와 동네 아주머니의 기사 노릇을 거절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 또한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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