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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친정엄마와 거리두기로 얻은 것

by 토끼랑께 2021. 4. 2.

암 전문 요양병원에서 3개월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친정엄마의 얼굴이 많이 야위어 있었다. 막상 그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3개월 떨어져 지내면서 친정엄마가 왜 그렇게 했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보았다. 그러면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고, 엄마를 대하는 태도 중 내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친정엄마를 위한다는 핑계로 한 잘못들

친정엄마가 일을 무리하게 하고 나면 저혈당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일이 많았었다. 그러다 보니 친정엄마가 일을 하려고 하면 무조건 못하게 내가 말렸다. 그리고 일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엄청 짜증을 냈다. 다쳐서 또 병원에 가고 싶으냐고 했다. 음식을 짜거나 맵게 먹지 못하게 하고, 커피믹스에 설탕 추가하는 것도 못하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는 말은 안 된다는 말과 하지 말라는 말 뿐이었다.

 

 

친정엄마는 '내가 죽은 송장도 아니고 어떻게 아무 일도 못하게 하냐.' '네 잔소리가 시어머니 시집살이보다 더하다.'

이제는 친정엄마와의 이런 삶을 반복하기 싫었다. 친정엄마가 내가 의견은 묻지도 헤아리지도 않고 엄마 방식으로 나에게 최선을 다했듯이 나도 친정엄마가 다치거나 더 아플까 봐 염려하는 행동임에도 친정엄마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내 입장에서만 친정엄마를 통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친정엄마와 관계를 개선하고 잘 지내기 위해 몇 가지 원칙을 세워 보았다.

 

 

친정엄마와의 거리두기

나는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1년 후에 이사를 하기로 남편과 결정을 했다. 친정엄마와 떨어져 살면 오히려 친정엄마를 좀 더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장모님과 20년 넘게 살아온 남편에게 자유로윤 삶을 살게 해주고 싶기도 했다. 

 

 

친정엄마의 음식취향 인정하기

내가 음식을 만들 때에는 친정엄마에게 부엌에 나오시지 말라고 했다. 평소에 내가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친정엄마는 식탁에 앉아 지켜보며 일일이 지적을 했었다. 친정엄마가 드실 음식은 친정엄마 입맛에 맞춰야 하니 그대로 따르지만 남편과 내가 먹을 음식까지 엄마 방식으로 하라는 것은 싫다고 했다.

친정엄마가 원하는 대로 다시다, 소금, 간장, 설탕을 다 넣어서 드시게 식탁 위에 올려놓겠다고 했다. 음식을 가려서 건강해지는 것보다. 맘대로 못 드시는 스트레스가 더 크신 것 같아서였다.

 

 

친정엄마의 취미활동

그 연세의 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친정엄마는 특별한 취미 활동이 없다. 그러다 보니 동네 아주머니들 마실 오면 같이 이야기하거나 화투놀이를 하는 것이 취미라고 할 수 있다.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해서 치매예방에 좋다는 퍼즐을 사다 드리고 하시게 했다. 그리고 집안일 중 엄마가 할 수 있는 일로 하루에 무리가지 않을 만큼의 양을 드렸다.(파 다듬기, 마늘 까기, 콩 고르기 등)

 

 

친정엄마의 신앙생활

나는 날마다 엄마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우리가 이사 갈 계획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이사 가더라도 하루 한 번씩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주일에 교회에 나가자고 했다. 친정엄마가 함께 교회를 나가야 내가 모시고 교회 가기 위해서라도 자주 오지 않겠냐고 설득을 했다. 결국 친정엄마는 내가 이사 가기 2달 전부터 교회에 함께 나가기 시작했다. 주일예배에 참석하신 친정엄마는 찬양을 따라 부르시고 기도도 하셨다. 지금도 찬양을 틀어 드리면 따라 부르시고 기도를 하면 "아멘"이라고 하신다.

 

 

친정엄마와 외식하기

친정엄마는 우리가 외식할 때 같이 가자면 번번이 싫다고 거절을 하시던 분이었다. 남편과 나는 주일예배에 참석 후 친정엄마를 모시고 외식을 하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예전과 달리 싫다는 말도 안 하시고 음식이 더러 입에 맞지 않아도 조금이라도 드셨다. 친정엄마는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전까지 4개월을 나와 함께 교회를 다녔고 주일이면 예배를 드린 후 함께 외식을 했다. 나도 친정엄마와 한집에 살날이 몇 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더 말도 조심해서 했고 친정엄마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친정엄마와 같은 아파트로 이사하기

친정엄마가 살고 계시던 마을은 10여 년 전부터 건설회사에서 아파트를 지려고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설회사와 마을 주민과의 협의가 잘되어 마을 전체가 땅과 집을 팔기로 했다. 이사 가는 날이 다가오며 친정엄마만 두고 나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남편이 같이 이사 가자고 친정엄마를 설득하고 있던 차에 이런 결정이 나서 우리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 후 나는 친정엄마와의 약속대로 하루도 안 빼고 매일 친정엄마 집에 가서 음식을 만들기도 하고 집안일도 도왔다. 어느 날부터인가 친정엄마 집에서 일을 하고 나올 때면 친정엄마가 "애썼다. 고맙다."라는 말씀을 했다. 그러면서 친정엄마와 나의 애증관계도 서서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글과 함께 있는 모란꽃 사진은 3월 어느 날 강진의 세계 모란공원 유리온실에 있는 세계 모란을 촬영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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