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장암 투병기

[암 투병기] 29. 암 치료 과정은 환자와 가족 모두 힘들다.

by 토끼랑께 2021. 5. 3.

암 진단을 받고 3번의 수술과 24회의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많은 고생을 했지만 가족들도 나로 인해 많은 고생을 했다.

[암 투병기]25. 암 치료 중 힘이 된 가족들에서도 밝혔지만 가족들은 서로의 역할을 분담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그렇게 잘해주는 가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가족들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화를 내기도 했고 떼를 쓴 적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족들도 힘들었을 텐데 그런 나의 짜증과 갑작스러운 행동을 잘도 받아 주었다는 생각이 들어 고맙다.

망고 잘못 사 왔다고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구토가 심해 음식을 거의 먹지를 못했는데 내가 다니던 회사 직원이 과일바구니를 보내준 적이 있었다. 다른 과일은 씹기조차 귀찮아 원액기에 즙을 내서 마셨지만 망고는 그냥 깎아 먹었는데 씹을 것도 없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좋았다. 그 후로는 항암치료를 받고 오면 다른 음식은 못 먹어도 망고는 조금씩 여러 번에 나눠 한두 개 정도는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자주 망고를 사다가 먹고는 했었다.

한 번은 남편에게 다른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망고를 사다 달라고 했다. 망고를 사러 나간 남편은 평소의 두배가 넘는 시간이 지나서야 망고 두 개를 사서 갖고 왔는데 망고의 상태가 시들고 작은 것이 볼품이 없었다. 나는 남편이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사 왔냐고 화를 내며 겨우 망고밖에 먹지 못하는데 망고 하나 좋은 것 사다 주지도 않는다고 했다. 뒤따라 들어온 딸이 시장에 같이 갔었다며 과일 가게를 여러 곳을 다녀도 망고가 없어 그것도 간신히 사 온 거라고 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밖에서 여러 과일가게를 다녔던 남편만 억울하게 야단을 들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남편은 망고만 봐도 그때 생각이 난다면 망고는 먹기 싫다고 한다.

 

 

 

 

내 몸이 마음대로 되질 않아 서글펐다

시골마을 단독에 살던 우리 집은 여름이 돌아오면 파리와 모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현관 입구와 방문에 자석 모기장을 설치하고는 했었다. 하루는 남편이 문 입구에 여닫이 모기장을 설치하기 위해 나보고 도와 달라고 했다. 모기장을 설치하려면 가장자리에 끈끈이를 붙여서 고정을 해야 하는데 나는 목표한 자리에 끈끈이를 붙이려고 손끝을 갖다 대면 자꾸 옆에 붙이게 되었다. 내 손끝이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고 자석이 서로 같은 극끼리 밀쳐내는 듯 나의 목표점은 자꾸 빗나가는 거였다. 그때 남편이 내게 "똑바로 붙이지 못하고 그렇게 자꾸 비뚤게 붙이면 어떻게 해 "했다. 순간 나는 남편이 그 말이 너무 섭섭하고 화가 났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끈끈이를 던져 버리고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 나도 똑바로 붙이고 싶은데 내손이 말을 안 듣는 단 말이야~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하며 한참을 울어 버렸던 것 같다. 남편은 큰소리로 말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소리 내어 울어버리자 엄청 당황해했었다.

 

 

 

 

아들의 말이 섭섭해 울기도 하고

한 번은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시내에 나가는데 내가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아들이 약간 핀잔하는 듯한 어투로 내게 말을 했다. 그 순간 너무 섭섭해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눈물을 참으려고 하던 말을 멈추고 가만히 있는데 내가 조용한 게 이상했는지 아들이 나를 바라보고는 표정이 이상하니까 나를 달래는 듯한 말을 했다. 순간 나는 더 설움이 북받쳐서 결국 펑펑 울어버리고 말았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일이 있던 주말에 서울에 있던 딸이 내려와 잘 지냈냐고 묻는데 아들 말 때문에 서운해서 울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런데 서러웠던 생각이 날뿐 왜 서러웠는지 기억은 나지를 않는데도 다시 서러움이 밀려와 딸 앞에서 또 울고 말았다. 그것도 아주 격하게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말이다.

 

 

 

 

거듭된 치료로 귀가 얇아진 나

암을 겪으면서 본 병원 치료 외에 건강식품이나 면역력에 좋다는 약은 거의 먹지 않았는데 대장암에서 폐로 전이가 되면서 두 번째 폐 수술을 한 후에는 나도 마음이 많이 약해졌는지 주변에서 좋다는 식품과 의료기기를 사들였다. 한 번은 면역력을 높이는 약을 구입해서 복용했던 적이 있었다. 남편이 하루는 내가 면역력을 개선해준다는 약을 먹는 것을 보고 "약 부작용이 많은 사람이 그런 거를 먹어도 괜찮겠어?"라고 말을 했다. 그 순간 나는 먹던 약과 남아있는 약을 다 모아서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앞으로는 이대로 죽든 말든 아무것도 안 먹고 아무 치료도 안 받을 테니 걱정 말아요~"라고 억지를 쓰고는 엉엉 울어버렸다.

 

 

채석강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무너진 나의 의지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회복할 자신이 있었다. 암 진단을 받았지만 몸의 통증을 겪었던 것이 아니었기에 암에 걸렸다는 실감이 나지를 않았다. 병원에서 수술받고 항암치료받은 후 관리만 잘하면 당연히 회복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항암치료가 시작되자 심한 구토와 메스꺼움으로 통증이 아닌 괴로움을 겪게 되었는데 너무도 당혹스러웠다. 암을 만만히 보았던 나의 생각은 오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의지는 힘없이 무너져 버렸다. 오히려 통증이 견디기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왔었고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항암치료를 마친 후 열심히 운동하고 음식도 주의해서 먹었는데도 6개월 만에 전이가 되어 폐 수술을 하게 되자 어렵게 12번을 버텨내었던 항암치료를 다시 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포감마저 느꼈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문득 '지금 회사에서 업무를 할 시간인데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을 때가 있다. 다시는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는 다른 세상에 와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어지간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던 내가 그 당시에는 잘도 울었던 것 같다.

 

 

청태산 자연휴양림

 

암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암 투병기간은 힘든 시간이다.

입원실에서 만났던 암환우 중에 한 분은 아들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주말에나 볼 수 있는데, 며느리만 혼자 와서 반찬을 냉장고에 넣어놓고 바로 가버려서 서운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밥을 혼자서 차려 먹으면서 이렇게 까지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굳이 힘겨운 치료를 받느니 그대로 죽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최근 만났던 암환우도 방사선 치료 후 어린 손자에게 안 좋을까 봐 당분간 오지 말라고 했는데 막상 아들조차도 와보지를 안아 빈집에 혼자 2주를 넘게 있었다고 한다.  방사선 부작용으로 걸음을 걷는 것도 힘들어 밥을 챙겨 먹기도 힘들었고 찾아오는 사람 없이 빈집에 혼자 있으려니 눈물만 나고 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며 서럽게 울었다. 

암 요양병원에서 만난 환자들 중 배우자가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 간호를 한 후 자신도 암에 걸린 경우를 여러 번 봤다. 암은 스트레스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암 환자 자신이 너무 힘들다고 해서 가족을 너무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족들의 스트레스 또한 엄청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덕유산 자연휴양림

 

우울증과 스트레스 극복하기 

암 치료로 받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극복하게 해 주었던 것은 딸의 권유로 시작된 믿음 생활이었다. 믿음 생활을 시작하면서 의지할 곳이 생겼고 마음에 평안이 오기 시작했다. 가족과의 여행으로 추억을 쌓게 되니 좋았고, 남편과의 정기적인 자연휴양림에서의 쉼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에 좋았다.

적절한 운동(요가, 하루 30분씩 걸으면서 음악 듣기)과 취미 생활(수예, 뜨개질)을 하면서 잡념이 없어지게 되었다.

암 요양병원에서의 생활로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어차피 암에 걸렸다면 환자 자신도 가족도 감정에 이끌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암 환자의 치료는 몸의 치료와 함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암 환자의 치료방법과 요양 계획을 서로 의논해서 적절한 방법을 찾는 것이 암환자의 회복에 아주 중요하다.

또한 암 환자의 가족들도 심리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이니 암환자도 자신이 힘든 만큼 가족들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해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