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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투병기

[암 투병기]28. 대장암의 초기 증상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

by 토끼랑께 2021. 4. 21.

암 진단을 받았던 2014년에 나는 위장질환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며칠에 한 번씩은 소화불량으로 약을 사 먹었는데 일반 소화제로는 소용이 없고 내과에 가서 진료를 받은 후 처방받은 약을 먹어야만 가라앉았었다. 

위가 걱정되어 받았던 건강검진

회사에서 매년 제공되던 '종합병원 건강검진권'이 있었는데 위에 아무래도 탈이 난 것 같아 신경이 쓰이던 나는 근무가 없는 토요일에 강남 논현동에 있는 B병원에서 종합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다. 검진 후 10일이 지나도록 결과가 나오지를 않아서 건강 검진했던 B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위염이 심하다며 내방해서 설명도 듣고 약 처방을 받아 가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위에 큰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기에 위 염증이 심하다는 말에 오히려 안도를 했었다. 토요일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위장약까지 타서 돌아왔는데 집에 도착하니 종합 건강검진 결과지가 우편으로 와있었다. 내용을 보니 혈변 소견이 있다며 대장내시경을 받으라는 안내가 되어있었다.

대장내시경 약을 보내주지 않는다 해 미루어진 대장내시경 검사 

당일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에 진료를 다녀온 나는 어이가 없었다. 위장 관련해 진료까지 받았는데, 위 관련 내용만 이야기해주고 다른 이상 유무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해주지 않았던 거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음 주 토요일에 대장검사를 받으러 갈 테니  대장검사를 위한 약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병원에서는 재검의 경우 약을 보내줄 수 없다며 직접 와서 타가라고 했다. 병원의 태도가 너무 무성의해서 그 병원에 다시 가서 진료를 받고 싶지 않아 예약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 당시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건강검진을 위해 하루 휴가를 내겠다는 말을 하기도 어려워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나는 2년 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을 때 용종 하나 없이 깨끗했었고, 전년도 12월에 직장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대장검사를 해보라며 나눠주었던 용기를 받아와서 검진했을 때 정상으로 나왔었기에 요즘 변비가 심해 혈흔이 있었을 거라고 합리화시키고 말았다.

혈변을 심하게 본 후에야 받은 대장내시경 검사

그리고 그해 10월에 휴지에 빨갛게 묻은 혈흔을 보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 가까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치질은 아닌 것 같다며 대장 내시경을 해보자고 했다. 그날이 화요일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회사 근무를 걱정해서 휴일인 토요일로 예약을 했다. 대장내시경을 받던 날, 나는 미리 준 대장내시경 약을 다 먹고 갔는데도 깨끗한 물이 안 나온다고 집에서 먹은 양과 같은 대장내시경 약을 또 먹고 예약시간을 2시간이나 지나서 검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 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나를 너무 오래 잔다며 간호사가 와서 자꾸 깨웠다. 나는 이제 일어나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일어난 나를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의사 선생님이 빨리 큰 병원에 가서 수술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대장에 내시경을 삽입하는데 얼마 들어가지 않아 좁아져서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어 중단했다며 모니터를 보여주었다. 나는 모니터를 보는 순간 '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을 넘게 약물을 먹으면서 병원 벽에 걸려있던 사진들을 보았었는데 사진 중 암이라고 쓰여있던 것과 너무도 흡사했다. 

나는 "서울 큰 병원이면 어디로 가나요?" 하고 물으니 몇 군데 병원 이름을 알려주었다.

큰 병원에 빨리 가서 수술을 받으라는 말에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던 나

나는 수면내시경을 위한 공복이 길었고 약물을 두배나 먹어 기운이 빠져서인지, 아니면 수면내시경 약기운 때문이지 꿈을 꾸는 듯 멍했다. 다른 생각은 없었고 배가 고프다는 생각만 들었다. 병원에서 나와 가장 가까운 죽집에 들어가 죽 한 그릇을 다 먹었다. 그리고 친정엄마가 다니시는 병원에 가서 친정엄마 약을 받았고, 예약했던 미용실에 가서 파마도 했다. 그때까지도 아무 생각을 안 했다. 집에 도착하자 너무 졸려서 자리에 누워 한참을 잤다. 

전화벨이 울려서 잠에서 깨어났다. 집 근처에 사는 지인이 짜장면 사준다며 놀러 오라고 했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그대로 누워있는데, 그제서야 오전에 대장내시경 검사를 한 일과 그동안 내게 있던 증상들이 생각났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나에게는 대장암의 초기 증상이 있었다. 단지 내가 알아차리질 못하고 아닐 거라고 합리화를 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몸에 일어나고 있었던 대장암에 대한 초기 증상들

  1. 봄부터 체중이 5킬로 넘게 빠졌었다.  몇 년에 한 번씩 겨울에 불어난 몸을 봄이 되면 다이어트로 체중조절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쉽게 빠진다고 생각했었다.
  2. 얼굴에는 살이 빠지면서도 배는 나왔었다. 나는 나이가 들으니 얼굴살이 빠져서 배로 간다고 했다.
  3. 빈혈이 있었는데 젊어서도 가끔씩 빈혈이 있었기에 폐경이 되려고 그러나 보다 생각했다.
  4. 매주 마사지를 받는데도 얼굴에 기미가 생겨서 없어지지를 않길래 위장이 안 좋아서 그러는가 보다 생각했다.
  5. 배변을 볼 때에 항문 주변이 아니고 왼쪽 옆구리 쪽에 무언가 막힌 듯했고, 막상 급해서 화장실을 가도 변을 보기가 힘들어 애만 쓰다 나오는 적도 있었었다. 나는 변비가 심하다고 생각했고 평소에 술을 거의 먹지를 못하고 어쩌다 맥주를 마시면 설사를 했는데 그러고 나면 속이 편해져서 일부러 가끔 맥주를 마시기도 했었다.
  6. 수시로 졸음이 와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봄이라 그런가 보다, 갱년기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7. 휴일에도 아침 6시면 일어나었는데 그 해에는 하루 종일 몸살을 앓듯이 몸이 오슬오슬해서 꼼짝 못 하고 누워만 있던 적이 많았다.
  8. 머리카락도 윤기가 없어지고 푸석푸석해졌었다.
  9. 방귀 냄새가 지독했고 배에 자꾸 가스가 찼고 변이 가늘어졌었다.
  10. 소화가 되지를 않아 고생을 하면서도 2년 전 대장내시경이 깨끗했다는 이유로 자주 가던 내과 선생님도 나도 대장내시경을 해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이 모든 생각이 떠오르니 의사 선생님이 대놓고 암이라는 말은 안 했지만 나는 틀림없는 암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암에 대한 초기 증상은 알아채면서

10년 전 유방암을 겪었던 친구를 몇 달 만에 만났는데 모임을 하는 동안에 누울 자리만 찾고, 얼굴색이 안 좋아 보여  나는 내일이라도 건강검진을 받아보라고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그날 나의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친구는 다음날 바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같이 근무하는 직장 후배가 너무 자주 아프다는 말을 하고, 피곤하다는 말을 자주 헸다. 목 부위가 유난히 부어있길래  바로 건강검진받을 것을 권했는데 갑상선암으로 진단을 받았다.  남들에게는 검사를 권유해서 암을 발견하게 했으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 나타났던 대장암의 초기 증상들을 무시한 채 재검 권유에도 미루다가 나는 결국 그해 가을에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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