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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투병기

[암 투병기]25. 암치료 중 힘이 된 가족들

by 토끼랑께 2021. 4. 3.

내가 겪었던 암 투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어떻게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한다. 물론 본 병원에서의 수술과 항암치료 그리고 한방병원과 암 전문 요양병원의 치료와 식이요법 등이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치료의 과정에 앞서 내가 긍정적인 마음으로 암을 받아들이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의 사랑과 주변 지인들의 애정 어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창문밖 배과수원에 배꽃이 활짝 폈다.

가족 중 누가 더 애를 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자리에서 내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해줬으니 말이다.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에는 그냥 담담했었다. 그리고 "내가 왜 하필 암이 걸렸을까?"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암에 걸렸네." "이미 걸렸다는데 어쩔 수 없지 잘 치료를 받으면 되겠지."라는 생각과 치료하면 낳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내 걱정보다는 이사실을 받아들일 가족 걱정을 더 했었다. 그 당시 내가 그래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두 아이가 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 것이었다.

배꽃

딸의 정성스러운 간호

병원 치료를 시작하면서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은 수술 시작부터 항암치료까지 내가 본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의 모든 것을 책임졌다. 나는 수술 후 나를 간호할 간병인을 미리 예약해 놓았다.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딸이 곁을 떠나지 않고 나의 안색을 살피며, 말하지 않아도 나의 필요를 다 해결해주었다. 수술 후 물을 마시지 못해 입술이 마르면 입술에 거즈로 물을 적셔 주었고, 수술실에서 나온 내가 심호흡을 계속해야 하기에 잠들지 못하게 수시로 깨워주는 것도 딸의 몫이었다. 몸이 순환이 안될까 봐 온몸을 주물러 주었고, 시간을 맞춰서 운동을 시켰다. 수시로 내 상태를 확인하느냐 딸은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병원에서 나오는 죽을 못 먹겠다고 하면 병원 밖으로 나가 먼 거리까지 가서 음식을 사 와서 먹게 했다. 내가 암에 걸리기 전의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철없는 응석쟁이였다. 집에 오면 "엄마~ 사랑해 보고 싶었어" 하며 포옹을 한다. 그러고는 차려주는 밥상에 과일까지 해주는 대로 잘도 받아먹고 했다. 딸이 머리 감고 제대로 말리지를 않고 있으면 감기 걸릴까 봐 내가 말려주고는 했었다. 마냥 어린애 같던 딸이 세심하게 정성을 다해 간호하는 모습에 나는 물론 가족 모두가 감탄을 했었다. 딸은 더 이상 응석쟁이가 아닌 나의 든든한 보호자였다. 정말 그 정성이 얼마나 지극한지 나는 치료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베 과수원 배꽃

남편의 묵묵한 한결같은 사랑

남편은 내가 병원에 입원과 퇴원하는 부분을 책임졌고 집에 있는 동안 꼼짝 못 하고 누워 있는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사서 날랐다. 음식을 먹고 나면 메스꺼워 바로 양치질을 해야 하는 나를 위해 양칫물을 챙겨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기운을 차리면 차에 태워 공기 좋은 곳을 찾아 여행을 시키고 유명한 맛집을 데리고 다녔다. 내가 피곤해지면 얼굴색이 노랗다 못해 푸른색이 도는데 그 순간을 너무 잘 알아차려서 차에서 누워 쉬게 하거나 숙소로 바로 되돌아 들어가서 쉬게 했다. 언제 컨디션이 떨어질지 모르니 산행할 때에도 항상 엠보싱 돗자리와 담요를 챙겨서 등에 메고 다녔다.

자상한 아들의 사랑

아들은 내가 암에 걸렸을 때 집에서 독립해서 있었는데 "아들 얼굴 자주 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바로 집으로 들어와 먼길을 출퇴근했다. 결국은 나중에 집 근처로 직장을 옮겨서 집안일을 도와주었다. 집안 청소와 빨래는 물론 남편 밥을 챙겨주는 것도 아들이 담당을 했다. 그리고 남편이 바쁠 때면 쉬는 날 나를 차에 태워 근처 나들이를 시켜주기도 했다. 아들은 어려서부터 누나에 비해 어른스럽고 속이 깊은 아이였다. 부엌일을 할 때면 옆에 와서 조용히 도와주는 것도 아들이었다.

산책길에 만난 꽃

중간에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구토를 하다가 자꾸 기절하는 일이 있어 항암 치료를 중단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가족들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에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남은 항암 치료를 끝까지 해내기도 했었다.

탱자나무 꽃

지인들의 응원

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힘들다 보니 가족과 아주 가까운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의 연락을 받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염려해서 내가 항암치료 후 음식을 다시 먹기 시작할 무렵이 되면 집에 찾아와 나를 태우고 나가 보양식을 사 먹이고 과일과 건강식품을 챙겨주었던 분들이 있었는데 내가 힘들까 봐 가능한 질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챙겨주었다. 서산에 사는 후배는 바닷가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수시로 택배로 보내주기도 했다. 식당을 하는 후배는 처음 입원했던 암 전문 요양병원 반찬을 못 먹겠다고 했더니 반찬을 만들어서 갖다 주기도 했었다. 지방에 있는 암 전문 병원까지 찾아왔던 친구들은 같은 병실 암환우들 먹을 과일까지 준비해와서 나를 부탁하기까지 했다.

산책길에 만난 이름모를 꽃

나의 암 치료를 받는 과정이 길어지면서 내가 불편해할까 봐 연락조차 못한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나를 배려하고 염려해주는 분들이 고마워서 카카오스토리에 나의 일상을 사진과 함께 올리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한 친구가 그렇게라도 소식을 알 수 있어 안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던 글

비록 암이 걸려 힘든 치료의 과정을 겪어야 했었지만 그렇게 함께 해주었던 지인들 덕분에 나는 내 삶이 헛되지는 않았다는 위안을 받을 수 있었고 열심히 치료를 받는데 큰 힘이 되었다. 이름을 일일이 나열할 수는 없지만 그분들이 내게 준 음식은 단지 먹고 배부른 음식이라기보다 힘내라는 응원이었다고 생각한다.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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