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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친정엄마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

by 토끼랑께 2021. 3. 7.

친정엄마는 자신이 만든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큰 분이시다.

아버지의 엄마 사랑

엄마의 그런 자부심은 내 기억으로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잔치집에 다녀와서 엄마한테 늘 하시던 말씀이 "음식이 영 아니었어 무슨 잔칫집 음식이 당신이 해주는 비빔국수 한 그릇 맛보다도 못하더라고." 비교 음식 메뉴는 바뀌지만 아버지는 늘 엄마가 만들어 주는 음식이 훨씬 맛있다고 하시는 거다. 그러면 엄마는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띠며 "한 그릇 해줄까요?" 하면 아버지는 "좋지~"하고 대답하신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가스레인지나 전기레인지가 있는 것이 아니고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들었고 후에는 석유곤로나 연탄불에 하는 음식이었는데도 엄마는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가 원하는 음식은 언제나 신이 나서 만들어 주셨다. 엄마가 음식을 만들어 아버지에게 드리면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씀은 "그래 이맛이지 역시 당신 음식 솜씨가 최고야~" 하며 엄지 척해 보여주신다. 여러 음식 중 아버지는 밀가루 음식을 무척 좋아하셨다. 국수, 만두, 찐빵 등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은 늘 엄마가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을 가리지 않고 아버지가 이야기만 하면 바로 만들어 주셨고 만드는 엄마도 드시는 아버지도 싱글벙글하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들 앞에서도 당당한 엄마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 집은 해마다 잔치가 있었다. 삼촌들이 장가를 갔고 고모가 시집을 갔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회갑연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잔치는 집에서 며칠간 음식 대접을 했었다. 마지막으로는 며칠간 수고를 한 동네 아주머니들이 함께 음식을 먹는 것으로 끝이 난다. 엄마가 잔치의 마무리로 하나 더 하던 행사는 내가 다닌던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불러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까지 모두 13분이었는데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 오는 버스가 없어 4km를 걸어서 오셨다. 엄마는 큰상 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다른 사람들이라면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고 할 말씀을 하지 않고 "열심히 차렸으니 다 드시고 가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선생님들은 "맞습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도 차린 게 없다고들 하시는데 어머님은 솔직하시고 당당하셔서 좋습니다." 하고는 모두 기분 좋게 웃고 음식도 맛있게 드시고 갔다.

 

 

엄마의 통 큰 음식 만들기

엄마는 밀농사 추수를 하면 밀가루를 반죽해서 발효시킨 후 팥을 삶아 속을 넣은 찐빵을 만들어 사랑채 큰 가마솥에 가득 쪄서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까지 다 먹게 했었다. 칼 장국을 만들 때면 밀가루 반죽을 해서 대형마트에서 파는 큰 피자 사이즈로 5,6개를 밀은 후 가마솥에 삶아내어 풋고추와 파, 마늘을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해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이웃집 식구들까지 불러서 함께 먹었다. 봄이면 쑥을 뜯어 삶은 후 방앗간에서 싸라기 쌀을  빻아 다가 쑥버무리 떡을 쪄서 나누어 먹었다. 가족들과 이웃분들이 맛있다며 즐겁게 먹는 모습에 엄마는 힘겨운 내색은 없이 항상 즐거워하셨다.

 

 

엄마와 나의 음식 배틀

결혼 후 10년이 지난 후 내가 직장에 다니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친정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 엄마와 나의 음식전쟁? 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친정엄마는 항상 나보다 먼저 일어나 음식을 다해놓았기에 우리 가족 모두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살기 시작했다. 엄마보다 더 빨리 일어날 자신이 없기도 했지만 편하기도 해서 못 이기는 해주는 음식을 먹었던 거다. 그런데 남편과 아이들은 시댁에서 먹던 음식을 먹고 싶어 할 때가 있어 내가 주말에는 시댁에서 해 먹던 방법대로 음식을 하고는 했다. 친정엄마는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못 마땅한 표정으로 숟가락으로 휘~ 저어보거나 젓가락 끝으로 조금 집어 먹어 보고는 "이게 너희는 맛이 있냐? 원 같은 재료를 갖고 이걸 음식이라고 했냐." 하시고는 다음날 같은 재료를 엄마의 방식으로 두세 배의 양을 만드신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 보고 먹어 보라고 하면서 "할머니가 만든 것이 더 맛있지?"하고 아이들의 대답을 재촉한다. 아이들이 "외할머니가 해주신 게 더 맛있어요." 해야 상황이 끝난다. 주로 많이 부딪혔던 음식이 떡볶이, 동태찌개, 오징어볶음, 감자찌개, 부대찌개, 그리고 명절에 남은 음식으로 끓이는 전골이었던 것 같다.

 

오징어 볶음

 

친정엄마의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

엄마는 고기를 거의 드시지 않는 분이다. 그렇다고 생선을 좋아하는 분도 아니다. 주로 새로 한 따끈한 쌀밥에 김치 국물 부어서 말듯이 먹는 것을 제일 좋아하신다. 그리고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을 거부하신다. 아이들을 카레를 만들어주면 무슨 그런 음식을 먹느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시고 한번 드셔 보라고  하면 냄새도 싫다며 저리 치우라고 하신다. 치킨을 엄청 좋아하시지만 반죽에 카레향이 나면 절대로 드시지 않는다. 소시지빵은 드시지만 피자빵과 피자는 절대로 안 드신다. 아이들을 피자를 시켜주면 엄마는 옆에서 빈대떡을 만들어 주시며 이게 맛있지 그게 맛있냐고 하신다.

결국 나는 음식을 거의 만들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은 엄마가 음식 만드는 것에 대한 영역을 내어 주기 싫어하시는 것 같기도 했고 같은 식재료의 같은 음식을 4,5일 내내 먹어야 하는 아이들 때문이기도 하였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엄마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조차도 스스로 만들 수 없게 되셨다. 요즈음은 내가 된장국을 끓이거나 동태찌개를 끓였을 때 남편은 가끔 "어 장모님이 끓이셨어?" 하고 질문을 한다. 내가 "엄마가 무슨 음식을 해 이제 못하시지" 하고 대답하면 "아냐 장모님 음식 맛인데~"한다. 처음에는 친정엄마가 해주시는 음식이 낯설어 잘 안 먹을 때도 많았던 남편인데 이제는 오히려 장모님 음식이 그립기도 한가 보다.

 

마을 뒷동산 진달래

 

과할 정도로 음식을 많이 해서 이웃까지 먹고도 남아야 했던 것은 어려운 이웃에 대한 엄마의 배려였고, 엄마가 한 음식이 최고라는 평을 받는 것이 엄마의 기쁨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많은 음식을 끊임없이 해주셨던 것은 무뚝뚝한 그 성격에 엄마가 표현할 수 있는 애정의 방법이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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