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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할머니와 친정엄마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였다.

by 토끼랑께 2021. 2. 23.

할머니와 친정엄마는 거짓말쟁이?

우리 할머니는 거짓말을 잘하셨다. 이웃집 할머니가 낮에 오셔서 딸이 사준 옷을 자랑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가셨는데 저녁을 먹으면서 가족들에게 낮에 이웃집 할머니가 하셨던 이야기를 전하며 사실과 다르게 거짓말을 하시는 거다. 또 하루는 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재밌게 웃으시고는 저녁에 식구들 한테 내가 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지어서 말씀을 했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 할머니는 거짓말쟁이야 지난번에 금정 할머니 오셨을 때 한 이야기도 스웨터만 금정이 고모가 산거고 바지는 이야기도 안 했데 바지까지 사 온 거라 그런 거야 그리고 오늘 내가 했던 이야기도 그게 아니었어" 엄마는 열심히 설명하는 내 이야기를 신경도 안 쓰고 무시해 버렸다. 그 이후로도 그런 일은 자주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친정엄마도 이야기를 하면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게 아니다 아까 이런 이런 상황이었는데 엄마는 왜 거짓말을 하느냐고 하니 그 말이 그 말인데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느냐고 하면서 오히려 화를 내시고는 했다. 엄마 성격이 워낙 강하고 한번 하얀 벽을 보고 검다고 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본인이 하얀 벽인 것을 알아도 끝까지 우겨 버리는 성격이니 한번 엄마가 우기기 시작하면 나는 더 이상 논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거짓말쟁이다.

거짓말을 잘하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신지도 20년이 넘었고 친정엄마도 이제는 노인병원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지도 3개월이 넘어간다. 몇 년 전부터는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고 있다. 자녀들과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이야기하면 옆에 있던 딸이나 아들이 "엄마 그 이야기가 아니었잖아" 하고 지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무슨? 하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었는데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할머니와 엄마 생각이 났다. 할머니와 친정엄마의 거짓말 그것은 거짓말을 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그 상황 속 정확한 사실보다는 그 상황에 내가 느꼈던 느낌만이 더 강하게 남아있었던 거다. 상황 전체의 사실보다는 그 상황 속 내게 가장 강하게 남은 한 부분의 사실만 기억에 남게 되고 이야기를 전할 때는 그 사실을 뒷받침할 나머지 내용을 나의 느낌대로 이야기했던 거였다. 그러니 전체적인 사실이 왜곡되어 거짓말을 한 게 되었던 거다. 나는 노인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늙어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고 또 친정엄마와 최근까지 함께 지내며 본 생각으로는 이건 늙으면서 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다.


나이 들면서 변하는 일들

할머니가 연세가 드시면서 식사하실 때 음식물을 잘 흘리셨는데 어느 해부터는 친정 엄마가 음식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옷에 흘리는 것은 물론이고 엄마가 식사를 하고 일어나면 바닥에 음식물이 잔뜩 떨어져 있다..
몇 해전에서야 알게 된 사실은 두 분이 했던 말을 반복해서 하면서도 처음 하는 이야기처럼 하는 것은 이야기했던 기억을 잊어버려서이고, 책장을 넘기거나 돈을 세려면 손가락에 침을 바를 수밖에 없는 것은 손가락이 건조해졌기 때문이다. 나이 들며 사탕을 찾는 것은 입에 침이 마르기 때문이고 식사 후 달달하고 따뜻한 물을 좋아하는 것은 소화기능이 떨어져 단물이라도 마시면 속이 편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식사 중 사래가 들리는 것은 음식을 급하게 먹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기도와 식도 사이 조절하는 부분이 노화돼서였던 것이다. 필요하지 않은 말을 제어하지 못하고 하는 것과 말을 하다 내용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기력이 떨어지면서 집중력도 떨어져서였다.


나도 나이가 들고 있다.

어느 날 딸아이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는데 반응이 시원치 않을 때가 있다. 이미 내가 몇 번을 반복해서 했기에 딸은 "엄마 그 이야기 10번째야"라고 이야기를 할 때도 있지만 처음 듣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리액션을 이미 여러 번 반복하고는 지쳐 반응이 시원치 않았던 것이다

칠보산 휴양림에서 맞이한 해돋이


노인이 되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친정엄마

친정엄마는 자신이 노인이 되어가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걸을 때 옆에서 부축을 하려고 하면 손을 뿌리치며 "내가 할 수 있으니 잡지 마!" 하신다. 모든 것을 당신이 다 결정해야만 했고 당신의 판단만이 옳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엄마 자신이 제대로 설명을 못한 것은 절대로 인정 못했고 우리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고 화를 내고는 했었다.
한 번은 커피믹스를 사 오라면서 녹색 커피믹스가 맛있더라며 그것을 꼭 사 오라고 했다. 마트를 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녹색 커피믹스가 없었다.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녹색 커피믹스가 없다며 제품 이름을 물으니 "그것도 하나 제대로 못 사 오냐"시며 화만 내고 먼저 전화를 끊어버린다.
어쩔 수 없이 노란 포장에 끝에만 녹색이 첨가된 커피믹스를 사 갖고 가니 "그렇게 녹색이 있는데 못 찾고 전화를 했냐"라고 하신다.



오랫동안 가장의 역할까지 했던 엄마는 몸이 불편하면서도 모든 걸 본인이 주도적으로 처리하려는 경향이 크다. 그러다 보니 몸은 안 따르는데도 의욕이 앞서 자꾸 일을 벌이시는 듯하다. 그래서 여러 번 다치시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동생들과 나는 안타까우면서도 너무 속상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오는 변화 받아들이기

친정 할머니와 친정 엄마의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결심한 것이 있다.
나 역시 나이가 들어가면서 언어전달 능력과 기억력 그리고 몸의 노화가 올 텐데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 기억력만을 믿고 자식들 앞에 우기지 않아야겠다는 것과 이제는 한 발 물러나서 자식들을 믿고 자식들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식이 베푸는 배려를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들도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서 오는 현상들을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면서 왜 저러지가 아니고 나이가 드니 저렇게 되는구나 하고 이해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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