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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투병기

[암 투병기] 50. 폐암 4기였던 엄마 이야기를 쓴 책을 읽고

by 토끼랑께 2021. 12. 25.

오늘은 딸 친구인 강혜빈 작가가 쓴 " 이필숙 씨 딸내미 참 잘 키우셨네요."라는 책을 소개한다.

 

「00 어머니께

어머니 혜빈이에요. 한 번은 어떻게든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데 지난번 00 결혼식에서 처음 뵙고 이제야 글을 쓰네요. 저희 엄마가 투병하시던 때 00과 함께 얼마나 용기를 주고받고 함께 힘을 냈는지 몰라요. 항상 고마웠던 00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전하면서, 더불어 제가 늘 기도했던 어머니의 건강이 잘 유지되고 계시다는 소식이 참 감사해요.

얼마 전에 방송 나오셨다는 소식 들었거든요. 늘 지금처럼 사랑하는 가족들과 기운차게 지내시길 계속해서 기도할게요. 

건강세요. (2021.10.24 마음을 담아 혜빈이가 드립니다.)」

 

딸 친구의 편지

딸의 친구가 손편지와 함께 5년 전 폐암 4기로 2년간 투병생활을 하다가 천국으로 가신 엄마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했다며 보내왔다. 책에는 딸과 나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이필숙 씨 딸내미 참 잘 키우셨네요." 

혜빈이가 쓴 책을 받아 들고 제목을 읽은 후 선뜻 책장을 열어 읽는 것이 망설여졌다. 왠지 책장을 열어 글을 읽다 보면 혜빈이의 아픈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질 것 같았다. 식탁 한옆에 책을 올려둔 채로 두 달이 지나서야 오늘 책을 읽기 위해 첫 장을 넘겼다.

이필숙 씨 딸내미 참 잘 키우셨네요

 

앞부분 생략

이 책을 통해 우리 엄마 이필숙 씨가 되살아나고, 많은 사람이 엄마를 기억하고, 엄마가 누군가의 책장에 꽂혀서 오래오래 살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출간의 일차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더불어 상실이라는 보편적인 삶의 경험, 그러나 각자에게 아주 고유한 그 경험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참고 자료이자 전술 서로서 이 책이 역할을 한 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렇게 될 상상을 하며 좋은 사람들과 내내 기쁘게 책을 만들었다. 부디 처음부터 슬퍼할 준비하지 않고 끝까지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2021년 가을 , 강혜빈.」

- "이필숙 씨 딸내미 참 잘 키우셨네요. 시작하며 중에서-

 

2년 전 딸 결혼식에서 혜빈이를 처음 봤다. 

2014년 같은 해 3월에 혜빈이 엄마가 폐암 진단을 받으셨고, 나는 10월에 대장암 진단을 받았었다.

그런데 혜빈이 엄마는 24개월 만에 하늘나라로 떠났고, 나는 건강이 회복되어 딸 결혼식에서 하객들을 맞이했다.

딸에게 혜빈이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혜빈이가 나의 모습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날 텐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염려가 되었다.

하객들 사이로 내게 걸어오는 혜빈이를 보는 순간 눈빛과 표정에서 혜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게 다가온 혜빈이에게 "네가 혜빈이구나."하고 말없이 두 팔을 벌려 꼭 안아 주었다.

딸을 두고 간 엄마의 심정을 알 것 같았고 혜빈이가 그 순간은 내 딸인 것 같았다.

 

책은 4장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장 나의 엄마 : 1954년 10월 24일 출생 이필숙 씨

2장 엄마와 나 : 1985년 12월 3일부터의 우리

3장 엄마의 안녕 : 2014년 3월부터 24개월 동안

4장 엄마 없는 나 : 2016년 3월 9일 이후의 세상

 

24개월간 엄마가 암투병을 하는 동안 써놓았던 일기를 모아 책을 썼기에 그 당시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리고 암환자의 어려움뿐 아니라 가족들이 환자를 돌보는데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특히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사시던 집에 살면서 부딪혔던 현실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엄마의 빈자리를 그대로 체감해야 했고 엄마가 해주던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집안일은 해도 표시가 나지 않지만 안 하면 바로 표시 나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살림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사소한 집안일도 어렵지만, 전원이 나가 있던 냉동고를 여러 달이 지난 후에서 발견하고 그 안에 썩어 버린 음식물을 치워야 했던 일을 읽으며 얼마나 혼자 힘에 겨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글을 읽으면서 지팡이가 불효의 상징인 이유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친정엄마가 지팡이는 자식이 사주는 것이 아니라며 할머니 지팡이를 사다 드리며 돈을 받던 일을 보았고, 내게 친정엄마가 지팡이를 사 오라며 돈을 주시며 지팡이는 자식이 사주는 거 아니라는 말을 다시 들었다. 하지만 그냥 막연히 미신적인 것이 있나 보다 했지 그런 뜻이 있는 것인지는 오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딸과 함께 암 투병하는 엄마를 둔 딸 모임, '암딸모'를 결성해 서로 암환자의 가족으로서 어려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서로에게 의지했었다는 말에 딸에게 함께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암환우들의 가족들은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직 쾌유되기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엄마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순간에 연명의료 의향서를 서명하던 상황의 글을 읽으면서 엄마가 생전에 확고한 의사를 밝히셨어도 서명을 하는 자식 입장에서 힘겨웠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 역시 친정엄마를 노인요양병원에 입원시키면서 친정엄마의 의사를 따라 작성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 마음에 충분히 공감을 했다.

친정엄마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한 이후 자식들에게는 그런 어려움을 주고 싶지 않아 남편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찾아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했다.

혜빈이 엄마가 돌아가시던 시기가, 내가 폐로 전이되고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항암제 부작용과 조영제 부작용으로 기절을 하고 발작까지 하며 힘겹게 지내던 시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해는 내게도 무척 힘겨운 한 해였다. 폐 수술 후 다시 12번의 항암치료를 힘겹게 받았는데, 3개월 만에  또 양쪽 폐에 암이 생겨 수술을 했었다. 그 상황에 딸은 혜빈이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내게 할 수 없었을 거다.

혜빈이는 책에, 딸이 내게 혜빈이 엄마 죽음을 알려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미스터리라고 썼다. 그것은 간간히 들려주던 혜빈이 엄마 소식을, 딸아이가 어느 순간인가부터 전하지 않았기에 혜빈이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필숙 씨 딸내미 참 잘 키우셨네요.

 

그동안 나는 대장암 투병기를 쓰면서 어떻게 치료받았고 어떻게 관리하면서 건강 해졌는지에 대한 내용에 집중해서 글을 썼다면 혜빈이는 엄마의 삶과 엄마를 소개하고, 엄마의 투병하던 시간과 돌아가시고 나서의 시간들 속에 자신이 겪었던 일들과 심경을 기록으로 남겼다.

주변 사람들로 인해 어떤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는 지도 알았고, 암환우와 가족들의 아픔 속에서도 세상은 아무 일 없듯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되었다.

 

그 과정 가운데 느끼고 배웠던 점을 소개해서 다른 이들과 공유하려고 작성한 글이 누군가에게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을 한다.

암환우와 그 가족이 아니어도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기에 한 번쯤을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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