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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친정엄마가 하시던 일들을 이제는 내가 하고 있다

by 토끼랑께 2021. 12. 11.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지 반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돌아가셨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고, 친정엄마가 노인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었다. 다용도실을 정리하다 찹쌀을 발견하고는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찰밥을 한 번도 만들어 먹지를 않았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찰밥뿐 아니라 친정엄마가 좋아하셔서 자주 만들어 드리던 음식들을 최근에는 거의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할머니와 친정엄마는 계절과 절기에 따라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저장이 되어 있는지 시기를 놓치거나 빠트리지 않고 잘도 챙기면서 사셨다.

영암에서 한달을 지내고 올라오니 11월 초에 이웃집에 사시던 당숙모가 전화를 하셨다. 당숙모는 총각무를 뽑아놓았으니 갖다가 총각김치를 담그라고 하셨다. "벌써요?"라고 하는 질문에 당숙모는 "벌써는? 할 때 되었어. 엄마 살아계셨으면 벌써 뽑아오라고 야단했을 텐데 뭐가 벌써여" 하신다.
친정엄마는 누구보다 부지런했기에 다른 집들보다 빨리 총각김치를 담그고 동치미를 담갔었다.

동치미용 무

친정엄마의 김장사랑


4년 전 심정지로 돌아가실뻔했던 친정엄마는 신장투석까지 하고 계셨는데, 추석에 송편을 만들려고 마당에 있는 소나무에서 솔잎을 딴 후 발을 헛디뎌 주저앉으셨다. 주저앉으면서 충격으로 고관절이 골절되어서 수술을 받으셨는데 걷는 게 불편해서 투석을 받으러 다니시는 노인요양병원에 2개월 정도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셨다. 친정엄마는 김장시기가 다가오자 병원에서 좀 더 계시라고 하는데도 퇴원을 하셨다. 퇴원하시던 날 오후에 당숙모는 우리 집 대문 앞에 총각무를 산더미처럼 뽑아다 놓았었다.
고관절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친정엄마는 말로만 지시를 했고, 총각김치를 시작으로 동치미, 깍두기, 파김치, 짠무를 내가 다 담아야 했는데 여러 번의 수술과 항암치료로 몸이 회복이 덜되었던 나는 지쳐서 쓰러지고 말았고 남편은 나를 암 요양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결국 그해 배추 김장김치는 만들지를 못해 전라도에 아는 지인을 통해 가정에서 만든 김장김치를 구입해서 먹었다.
친정엄마는 그 다음해에도 결국 김장을 했었고 돌아가시기 2년 전 가을 마지막이라며 배추 50포기로 김장을 담그셨다.

10년전 친정김장하는 날

친정엄마가 마지막으로 담아 놓으신 된장


총각김치를 담던 날 당숙모는 동치미를 담그라고 무를 한 다발 뽑아오셔서 다음날 동치미까지 담갔다.
김장김치까지 마치고 나서 당숙모댁에 간식을 사 갖고 찾아갔다. 당숙모는 콩을 삶아 메주를 6 덩이나 만들어 거실 한쪽에 짚을 깔아놓고 널어놓았다.
메주를 만들어 놓은 것을 바라보니 당숙모는 '된장은 있어?" 하고 물으신다.
친정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총각김치로 시작해 배추김치까지 김장을 담고 나면, 메주를 만들고는 하셨었다.
친정엄마는 당신 건강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아셔서인지 3년 전 가을에 김장김치를 다 담그고 난 후 평소보다 많은 양의 메주를 만드셨다. 봄이 돌아오자 메주로 간장을 담그고 간장에서 건진 메주로 된장을 큰 항아리로 가득 담았다. 작년 1월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큰 항아리에 있던 된장을 통에 담아 동생들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우리 집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는데 아직 10kg 통으로 3통이 남아 있다.
당숙모에게 아직 3통 남아 있다고 하니 떨어지면 이야기하라고 하시는데 지금 있는 된장이면 몇 년을 먹을 수 있을 듯하다.

총각김치

친정엄마의 때에 맞추어 하시던 일들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을 구입하는 것도 다 시기가 있다.
마늘수확시기인 5,6월에는 마늘을 여러 접을 사서 집 뒤 처마 밑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 놓는다.
추석이 돌아오면 청국장을 만드시는데 삶은 콩을 띠운(발효)후 절구에 빻는 일은 우리 몫이다. 발효가 되어 진이 나오는 콩을 절구에 빻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해보지 않은 사람이면 모른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청국장을 추석명절에 찾아오는 작은아버지와 고모 그리고 외삼촌댁까지 나누어 주셨다.
가을이면 물고추를 잔뜩 사서 옥상에 널어서 말리는데 비라도 내리면 사람이 누워 자야 할 안방 방바닥과 친정엄마의 침대 위에 고추가 누워 자는 일도 많았다. 고추를 널고 덮어두고 하기 위해 매일 아침저녁으로 옥상을 오르내려야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해부터인가 시골마을에 건조기가 들어오면 물고추를 구입하지 않고 마른 고추를 구입하게 되어 수고를 많이 덜 수 있었다. 마른 고추를 한 해에 50근 정도 구입하셨는데 말리는 수고는 덜었지만 양이 많다 보니 일일이 고추꼭지를 따고 행주로 닦아 내는 일도 큰일이었었다.
들깨와 참깨 콩을 구입하고 보리를 구입해 싹을 틔워 엿기름을 만들기도 해야 한다.
겨울에 김장이 익어가기 시작하면 김치만두를 만들고 엿기름으로 식혜를 만들고는 한다. 그리고 가래떡을 뽑아 겨우내 떡국을 끓여먹게 하셨다.

밥 삭히기(식혜만들기)

이제는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그 모든 일들이 끝났다. 친정엄마가 젊으셨을 때는 혼자서 알아서 그 모든 일을 하셨지만 연세가 드시고 몸이 불편해지면서는 친정엄마의 지시에 따라 그 일들을 내가 보조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친정엄마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이제 일 좀 그만 벌리고 편하게 사서 먹자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 가까이에서 친정엄마가 하시던 일을 보고 살아와서 그런지 그 시기가 되면 해야 할 일이 생각이 난다.
물론 친정엄마처럼은 많은 양은 아니지만 봄에 마늘을 2접 구입을 했고, 가을에 들깨를 한말 사서 들기름을 짜 왔다.
김장을 하기 위해 고춧가루를 구입하고 새우젓과 멸치액젓을 구입했다.
절임배추 40kg를 구입해 김장을 담그고, 총각김치, 동치미, 짠지, 파김치를 담갔다. 김치통이 넘쳐 따로 꺼내놓았던 김장김치 두쪽으로 며칠 전 김치 만두도 만들어 먹었다.

팥칼국수

오늘은 송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팥죽집에서 팥칼국수를 2인분 구입하면서 새알을 두 봉지 사 갖고 왔다. 팥칼국수는 내일 점심에 시어머님 댁에 가서 끓여드리고, 새알은 냉동실에 두었다가 동짓날 동지팥죽을 만들려고 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전기밥솥에 식혜를 만들기 위해 밥을 엿기름물에 삭히고 있다.

김치만두

친정엄마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며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머릿속에 그 모든 일이 저장되어 있고, 그 시절 음식들이 이제는 그리워진다.
친정엄마처럼 자식들한테 걱정을 끼칠 정도로 많은 양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 시절의 추억을 즐겨보고는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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