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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딸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니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

by 토끼랑께 2021. 11. 11.

딸이 결혼한 지 어느새 12월이면 2년이 된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결혼을 늦게 하다 보니 첫아이를 갖게 되는 시기도 자연스럽게 늦어지는 듯하다.

얼마 전 딸아이가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 30대 중반이 넘어서 한 임신이라서 많은 것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딸의 임신소식이 반가우면서도 나를 닮아 입덧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는데, 나의 생각은 바로 현실이 되었다.

딸의 입덧

딸은 처음에는 속이 좀 메스꺼운 것 같다며 얼큰한 것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평상시 좋아하지 않던 고기가 먹고 싶어 고기를 사 먹었다며 신기하다고 했다. 그리고 속이 조금 울렁거리기는 해도 잘 먹고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제 부터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속은 더 울렁거리기만 하다고 한다. 냉장고 냄새가 싫어 냉장고 문을 여는 것조차 싫다며 물에서도 냄새가 난다고 한다.

몸이 나른하고 잠이 쏟아져서 힘들다고 했다. 

그게 어떤 증상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이 기간이 잘 넘어가기만을 바라본다.

나의 입덧

30여 년 전 딸을 임신했을 때 나의 입덧은 너무도 심했다.

오죽하면 시어머님은 나의 입덧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시부모님과 두 명의 시동생이 함께 살았는데, 아침에 밥을 짓는데 밥이 끓기 시작하자 속이 메스껍고 토할 것 같았다.

그렇게 입덧이 시작되었는데 하루가 지날수록 음식을 전혀 먹을 수가 없었고 김치 냄새가 싫어서 냉장고 문을 열 수가 없었고 냉장고에 들어갔던 음식은 다 먹을 수가 없었다. 물에서 조차 냄새가 나서 물을 마시는 것도 힘이 들었다.

하루가 지날수록 입덧이 심해져서 점점 음식을 먹지 못했고, 온몸에 기운이 빠져 손가락 끝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잠만 자다가 식구들이 밥을 먹을 시간이 되면 음식 냄새가 싫어 마당에 나가 화단 앞에 앉아있었는데 풀과 흙냄새를 맡으면 속이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시아버님의 며느리 사랑

하루는 시아버님이 송탄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피자를 한판 사 갖고 오셔서 먹어보라고 하셨다.

그 당시 내게 피자는 너무도 낯선 음식이었는데 피자를 펼쳐 놓자 속이 더 메스꺼워 한쪽도 먹을 수가 없었다.

시아버님은 "이 좋은 음식을 못 먹냐? 남들은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인데?" 하며 아쉬워하셨다.  80년대 후반인 그 시절만 해도 피자가 흔한 음식이 아니었던 것은 맞다.

시아버님은 그 후로도 오렌지, 바나나 그리고 외국산 사과까지 사다 주셨다. 시아버님은 입덧하는 며느리를 위해 미군부대에서 구할 수 있는 과일과 음식들을 자주 사 오셨다. 그 당시 귀한 그 음식들을 나는 하나도 먹을 수가 없었고 그런 모습을 보며 시아버님은 안타까워하셨다.

친정엄마

하루는 친정엄마가 쑥을 넣고 만든 쑥개떡을 가지고 예고도 없이 시댁으로 찾아왔다. 딸의 입덧이 얼마나 염려가 되었으면 어려운 사돈댁에 떡을 핑계 삼아 찾아오셨을까?

평소에 떡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그때는 쑥향 때문이었는지 쑥개떡은 조금 먹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시던 시아버님이 "너는 그 떡이 피자보다 좋으냐?" 하며 껄껄 웃으셨다.

그리고는 시어머님에게 친정에 가서 입덧 가라앉을 때까지 쉬다 오게 사부인 가실 때 함께 보내라고 하셨다.

떡을 해서 온 친정엄마를 따라 그렇게 친정집으로 갔다.

친정에서의 생활

시댁은 새로 지은 양옥집이라 실내에 주방이 있어 음식 냄새를 피할 길이 없었지만 친정은 시골집이어서 부엌과 방이 따로 떨어져 있다. 음식 냄새가 내가 쓰는 작은방까지 오지를 않아 좋았다. 

친정에 가서도 밤낮없이 계속 잠만 잤다. 시댁에서는 누워 있으면서도 불편했었는데 친정에서는 아무리 누워 있어도 마음이 편하고 좋았다.

하루는 남동생이 짜파게티를 끓여놓고 나를 깨웠다. 그렇게 먹지 않고 잠만 자면 어떻게 사냐고 하면서 짜장면이 아주 맛있다며 일어나서 먹어보라고 했다.

속이 메스꺼워 계속 싫다고 하니 통사정을 하면서 "누나 한 젓가락만 먹으면 더 이상 권하지 않을 테니 딱 한 젓가락만 먹어봐.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하며 권유했다. 남동생의 간곡한 권유에 마지못해 일어나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는데  비위가 상해 다 토하고 말았다.

토하는 모습을 보더니 동생이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친정엄마는 입덧 가라앉는데 좋다며 검은콩 볶은 것과 누룽지를 먹어보라고 줬다. 그리고 다른 집에서 묵은지를 구해다가 물에 헹구어 꼭 짜서 끓인 누룽지와 함께 갖고 왔다. 다른 집 딸이 입덧이 심했는데 묵은지 먹고 속이 가라앉았다고 하며 먹어보라고 하셨다.

예전에는 김치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어서  6~7월이 되면 묵은지를 구경하기가 힘들었는데 묵은지 덕분에 누룽지를 제법 먹었었다. 그 후로도 마을에 다른 집 묵은지와 짠지는 내가 다 먹은 듯하다.

친정엄마는 성격이 무뚝뚝한 편이어서 감정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분이었는데, 말씀은 별로 안 하시면서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 있는 딸을 위해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 한수저라도 먹게 해 주었다.

친정엄마는 임신을 세 번 하는 동안 입덧이라는 것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친정 할머니는 "내가 입덧이 심했다. 예전에는 시어른들이 어려워 내색도 못하고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아는 병이니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 하시며 좋은 것을 닮지 왜 그런 걸 닮았냐고 하셨다.

그렇게 친정에서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입덧이 조금 가라앉았다. 다행히 토하지 않고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시댁으로 돌아왔다.

남들은 입덧을 시작하면 먹고 싶은 음식이 많다는데 나는 먹고 싶은 음식은 거의 없었다. 단지 내가 너무 먹지를 못하며 뱃속에 있는 아기가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 같아 억지로라도 먹으려고 노력했었다.

덧하던 시절 유일하게 먹고 싶었던 음식

한동안 잊고 지냈었는데 이 글을 쓰는 순간 입덧하던 시절에 유일하게 먹고 싶었던 음식이 생각이 났다.

입덧하던 시절에 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은 순두부찌개였다.

결혼 전 서울 명동에 있는 코스모스백화점 맞은편에 '소공동 뚝배기집'이 있었다. 순두부가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데 뽀글뽀글 끓고 있는 순두부에, 식탁 위에 탁 쳐서 세워놓은 계란을 깨트려 넣어 먹던 맛이 아주 좋았었다.

그 시절 다른 음식 생각은 나질 않고 왜 그 음식이 그리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 먹고는 싶은데 입덧뿐 아니라 차멀미도 심하게 했기에 서울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서울 지리를 전혀 모르는 남편에게 말해보았자 사다 주지도 못할 것 같아 말을 꺼내지도 않았었다.

친정엄마 생각

세월이 흘러 딸아이가 임신을 해서 입덧을 하고 있다고 하니, 내가 입덧을 하며 고생을 하던 기억과 함께 한 달간 입덧을 하는 딸을 돌보았던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

그래서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봐야 친정엄마 마음을 안다고 했나 보다.

자식을 낳아 키우고 시집을 보내면서 친정엄마 마음을 다 알게 되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딸이 임신을 하니 아직도 친정엄마 마음을 다 알지 못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딸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 편히 쉬지도 못하고, 임신 초기여서 함부로 다닐 수도 없으니 친정으로 데리고 올 수는 없고 주말에 가서 음식이라도 만들어 주고 와야 할 듯하다.

부디 입덧이 빨리 가라앉아서 음식 골고루 잘 먹기를 바라고, 딸과 뱃속에 있는 손주가 건강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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