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친정엄마 그리고 시어머니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by 토끼랑께 2021. 10. 20.

요즈음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손주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아직 손주를 보지 않은 나는 친구들에게 손주 이야기를 하려면 만원을 먼저 내놓고 이야기하라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모두 며느리와 딸로만 살아왔는데 이제는 며느리와 사위를 맞이해서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그리고 장모가 되어 있다.
예전 할머니들은 자식이 결혼하면, 할머니가 되고 또 어른으로 대접을 받으며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그 나이가 되고 보니 할머니가 된다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고, 가만히 앉아 어른 노릇하며 며느리에게 밥상을 받는다는 것은 더 어색하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기분일 듯하다. 

동백꽃

할머니의 시어머니 노릇

어릴 적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를 보면 다른 집에 비해 고부갈등이 심해 보이지는 않았었다. 워낙 친정엄마가 여장부 스타일이어서 일찍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 왔고 집안 어른은 물론 시누이와 시동생도 잘 챙겼기에 두 분이 크게 갈등하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친정엄마가 시장에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늦게 들어오면은 할머니는 언짢아하며 "너는 장에만 나가면 매번 늦은 밤에 들어오냐?"라고 하시며 핀잔을 하셨고, 엄마가 올 때까지 식구들 밥도 주지 않고 계셨었다.

할머니는 식구들 밥을 차려줄 수 있는 연세였는데, 한번 도와주면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며느리 버릇만 나빠진다며 도와주지를 않으셨다.
그러던 할머니도 큰아들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는 간혹 며느리인 친정엄마가 혼잣말로 할머니에 대해 불평을 해도 못 들은 척  아무런 반응 없이 넘기고는 하셨다.
할머니는 2001년도에 86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는데 한 달 정도 집에서 꼼짝 못 하고 누워계셔서 친정엄마가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병간호를 했었다. 그 당시만 해도 시부모님이 몸이 편찮으시면 집에서 그렇게 모시는 게 당연하다 여기고 살던 시절이었다.

 

 

할머니와 다른 엄마의 삶

친정엄마가 시어머니가 된 후로 할머니는 10년 정도 더 사셨었다.
남동생이 직장 때문에 결혼초부터 분가해서 살았는데, 친정엄마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며느리까지 한집에는 살게 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했다.
친정엄마는 일찍부터 할머니에게 집안일을 넘겨받아 명절이나 집안 경조사 그리고 김장까지 모든 일을 직접 하셨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70세가 넘고 80세가 되어도 며느리한테 그 일을 넘기지 못하고 모든 일을 당신들이 직접 했다.
아들이 엄마 음식을 제일 좋아한다며 김장김치는 물론이고 평소에 아들이 올 때가 되면 아들이 좋아하는 김치와 밑반찬까지 잔뜩 만들어서 먹이고 또 갈 때면 차 트렁크로 가득 실어서 보내고는 했다.
자식들이 와서 맛있게 먹는 것만 바라봐도 좋고, 아들과 손주가 할머니가 만든 음식이 최고라는 말 한마디에 신이 나서 싱글벙글 웃으며 좋아하신다.
친정엄마는 며느리인 올케에게 자상하고 다정한 시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잔소리를 하는 시어머니는 아니셨다. 하지만 올케는 남동생과 엄마의 찰떡궁합 때문에 항상 뒷전으로 한발 물러나 시댁에 왔을 때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동백꽃 열매

고혈압과 당뇨합병증으로 건강이 나빠져서 병원에서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며 사시는 날이 많아지고 일을 무리해서 하면 저혈당으로 응급실에 가는 경우도 잦아졌다. 그러면서도 명절이 돌아오면 자식들 먹이려고 음식을 만드는 엄마를 보며, 제발 음식 좀 많이 만들지 말고 일도 하지 말라고 화를 냈었다.

친정엄마는 스스로 노인병원에 입원하기 일 년 전에 "이번 김장이 내가 하는 마지막 김장이다.  내년부터는 너희가 알아서 해 먹어라." 하시며 김장을 담그셨다.
자식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넬 줄 모르고 무뚝뚝하기만 했던 엄마는 자식들에게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서 먹이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애정표현이셨던 것 같다.
친정엄마는 마지막 김장을 했던 그다음 해 김장할 무렵에 신장투석을 다니던 노인요양병원에 스스로 입원을 하셨다. 그리고 입원한 지 6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엄마는 마지막을 자식의 돌봄이 아닌 노인요양병원을 택하셨다. 

 

시어머니가 된 선배들의 이야기

얼마 전 직장에 다닐 때 함께 근무했던 선배들과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며느리를 맞이한 지 10년이 넘었다.

선배들은 나이가 들었어도 일과 취미활동으로 바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건강문제로 정년을 몇 년 앞두고 퇴직해서 전원주택에 살고 있는 선배는 직접 텃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농사지어서 먹고 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야생화를 키우며 꽃과 관련된 밴드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선배는 자식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싶어서 텃밭에 수확한 신선한 야채와 직접 만든 음식을 준비해 아들에게 주는데 아들은 갖고 가지를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 "너희들 건강한 음식 먹게 하려고 직접 농사를 지어서 만들어까지 주는데 들고 가는 게 뭐가 힘들다고 안 갖고 가니?"라고 했더니 며느리가 갖고 오는 것을 싫어한다며 앞으로는 안 주셔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며 속상해했다.

그러자 동석한 선배가 요즘은 며느리가 먼저 음식 싸 달라고 하기 전에는 주는 것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시댁에서 음식 보내면 먹지 않고 그대로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싸줄 것 없다고 했다.
동석한 다른 선배는 며느리에게 너무 잘해줄 필요 없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들을 결혼시키며 바로 분가시켰는데 며느리가 불편해할까 봐 아들 집에 거의 가지를 않았다고 한다. 어느 해인가 며느리 생일에 아들 집 근처에 볼일이 있어갔다가 남편이 며느리에게 꽃바구니를 사다 주자고 해서 손주 얼굴도 볼 겸 꽃바구니를 사들고 찾아갔다고 한다. 며느리는 현관에서 꽃바구니만 받아 들고서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는데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고 한다. 남편이 눈치 없이 신을 벗고 들어서려고 해서 남편 팔을 당겨 들어가지 않고 현관에서 그대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동안 며느리를 배려해서 아들 집에 가는 것을 자제하며 살았었는데 이제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괘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선배들의 대화의 결론은 이제는 자식들 챙기지 말고 자기 자신을 챙기면서 건강하고 즐겁게 살자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었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로 산다는 것이

예전의 시어머니들에 비해 요즘 시어머니들은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 자체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노후를 자식들에게 의지해서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리고 부모님들이 노환으로 누워 대소변을 받아내야 할 정도가 되면 대부분은 노인요양병원으로 모시고 있기에 자기 자신들도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을 때까지는 집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며 살지만 거동을 못할 정도로 힘들어지면 노인요양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자주 얼굴 보고 맛있는 것을 나눠먹고 싶은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동백나무

시어머니와 친정엄마로서 자식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고, 자식들에게 부담스러운 부모는 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막연히 할머니와 친정엄마 그리고 시어머니가 사셨던 모습을 생각하며, 그러지는 말아야지 했던 부분을 생각하며 살면 될 것 같기도 한데 나이가 들면서 그분들이 했던 행동이 이해가 되는 건 뭐일까?

 

 

 

겨울을 견디어 흰 눈 속에서도 빨갛게 피어나던 동백이 10월이 되니 가지에 매달린 열매를 열어 씨앗을 땅에 떨군다. 그리고 다른 가지에서는 겨울의 추위를 견디어 빨갛게 피여 날 꽃망울을 만들고 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