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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항아리와 화분

by 토끼랑께 2021. 8. 25.

친정엄마가 돌아가신지도 거의 3개월이 되어간다.
며칠 전 옷장 서랍에서 속고쟁이를 보는 순간 친정엄마의 속고쟁이가 생각이 났다.
몇 년 전 담양에 있는 암 요양병원에 있을 때 가까운 마을에 천연염색을 하는 분이 한옥펜션을 운영하고 있었다. 남편이나 지인이 병문안을 왔을 때 그곳에서 하루씩 지내고 가고는 했는데 그 인연으로 친하게 지냈었다. 한옥펜션 사장님이 천연 염색할 천을 구입하러 갔다가 얻어온 것이라며 속고쟁이 3개를 선물로 줬다. 한여름에 입으면 시원하면서도 붙지 않는다며 한번 입어 보면 또 찾게 될 거라고 했다. 시어머님과 친정엄마를 하나씩 드린 후 한 개만 갖고 있었는데 친정엄마가 입어 보시더니 너무 좋다고 하셨던 물건이다.
순간 친정엄마 옷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친정엄마 살림이 다 어찌 되었는지 궁금했다.
처음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친정엄마의 유품 정리를 할 엄두조차 내질 못했다. 아니 유품 정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싫었다.

친정엄마가 좋아하시던 함박꽃

친정엄마 집에 여동생이 이사 오고

친정엄마 집에는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기 4개월 전부터 혼자 사는 여동생이 조카와 이사 와서 살고 있었다.
작년 1월에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나중에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 아파트를 여동생에게 준다고 하셨었다.
그런데 친정엄마가 건강이 악화되어 노인전문병원에 입원하고 난 후 여동생은 가까운 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며 친정엄마에게 집으로 들어오고 싶다고 했다. 친정엄마는 당신이 이제 집으로 돌아오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셨는지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셨다.
여동생이 이사한 후 친정엄마 물건을 챙겨서 병원에 갖다가 드리려고 친정집에 갔었는데, 여동생이 친정엄마 살림을 치우고, 일부는 창고에 넣어버린 후 여동생 살림으로 채워놓아 친정엄마가 쓰시던 방 말고는 다 바뀌어 있었다.
속상한 마음에 여동생에게 "아직 엄마가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뭐가 급해 엄마 짐을 벌써 치웠니? 이건 아니잖아."라고 말하고 말았다.
사실 나도 친정엄마가 회복되어 집에 다시 오시기 힘들 거라는 생각은 했었지만 그 순간 친정엄마가 다시 집으로 오시기 힘들다는 것을 확정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친정엄마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 여동생이 친정엄마 짐을 어떻게 하냐고 하길래 네가 살집이니 알아서 하라고 말하고 가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친정엄마와 함께 나눠 입었던 속옷을 보니, 친정엄마 옷이라도 한벌 갖고 있을걸 그랬다는 후회도 되고 친정엄마 손때 묻은 물건이 내게 없는 것도 너무도 아쉬웠다.

친정엄마 물건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친정엄마 물건을 어떻게 다 치웠냐고 했더니 헌 옷과 가전제품 수거하는 사람에게 거의 다 줘버렸고 가구와 그릇도 대부분 치웠다고 했다.
여동생도 자기 살림이 있고, 또 나름 취향이 있을 텐데 엄마 물건을 그대로 두고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좀 더 일찍 친정엄마 물건을 챙기지 못했던 것이 속상하다.
그 당시는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니 모든 게 허망했고, 친정엄마 물건을 보면 더 마음만 아플 것 같았었는데 이렇게 다 없어져 버렸다고 하니 아쉽기만 하다.

친정 집 거실에 있던 수국과 연산홍

문득 이사 올 때 친정엄마가 갖고 오신 화분과 항아리가 기억이 났다. 아파트로 이사 가니 필요 없다며 큰 항아리는 다 두고 매실장아찌라도 담그신다며 작은 항아리만 하나 갖고 오셨었다.
여동생에게 항아리도 버렸냐고 물어보니 항아리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버리지 않았다는 말일 수도 있어 찾아보라고 했더니 짐이 많아 못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친정엄마 집으로 갔다. 돌아가시고 나서 현관 앞까지는 몇 번 가보았지만 안에 들어가 보기는 처음이었다.

안방 베란다를 열었더니 여동생이 베란다 쪽에 커튼을 쳐놓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베란다에 엄마가 좋아하시던 화분이 대부분 말라서 이미 죽어있었다. 선인장도 시들어 축 쳐져 있는데 어쩌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외기실을 열어보니 큰 교자상과 청소기 등 짐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다행히 물건 사이 구석에 항아리가 있었다.
앞에 있는 짐을 꺼내고 안쪽 구석에 있는 항아리를 꺼내었다.

화초를 좋아하시던 친정엄마

어릴 적 시골집에는 담 밑에 백일홍과 봉선화 채송화 분꽃이 늘 있었다. 친정엄마는 여름이 되면 봉선화 꽃과 잎을 곱게 빻아 손톱에 물을 들여주기도 했고 백일홍이 피면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꽃이라는 이야기를 해마다 다시 하고는 했었다.
친정엄마가 연세가 들고 몸이 아프고 나서부터는 이웃집에서 화초를 얻어 화분에 심어놓고 꽃이 피면 한참을 바라보고는 "참 예쁘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연세가 드시며 점점 화초를 좋아하시는 엄마를 위해 가끔 꽃을 사다 꽂아놓고 꽃바구니 선물을 받으면 친정엄마방에 갖다 놓기도 했다.
처음에는 왜 이런데 돈을 쓰냐고 야단을 하셨었는데 그러면서도 봄이 되어 영산홍과 수국 등 꽃화분을 사서 안방과 거실에 놓아두면 얼굴이 환해지신다.
앞마당에 활짝 피였던 함박꽃이 질 때면 한 번에 우수수 꽃잎이 다 떨어져 버린다며 아쉬워하셨다.
집안에 있던 화분 중 호접난을 좋아하셨는데 해마다 꽃대가 올라오면 기둥을 세워 묶어놓고 이 꽃은 참오래도 간다 하며 좋아하셨다.
이웃집에서 얻어와 몇 년을 키우던 선인장이 여름에 장맛비에 녹아버리자 너무 속상해하셔서 다시 사다 드렸더니 선인장이 빨갛게 꽃이 피면 안방 창가에 옮겨놓아 달라고 해서 보고는 하셨다.

친정엄마 화분과 항아리 챙겨 오기

친정엄마가 그렇게 애지중지하시던 화분을 이사 오면서 챙겨 오셨는데 몇 달 만에 화초가 다 말라죽어버린 것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혹시 물을 다시 주면 살아날까 해서 선인장 화분을 챙기고, 화초가 죽어버린 작은 시루와 항아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루에 핀 양난 꽃
시루와 작은 항아리

안방 베란다에 친정엄마 시루에 호접난을 심고, 선인장 화분에는 물을 흠뻑 주었다. 그리고 작년에 친정엄마가 매실청을 담았던 항아리는 깨끗이 닦아 물을 가득 채워놓았다.
이제 안방 베란다에 친정엄마가 쓰시던 항아리와 두 개의 화분이 있다 그리고 작년이사올 때 갖고 온 조금만 항아리도 놓여 있다.
다행히 선인장은 하루 이틀이 지나니 살아나고 있다.

친정엄마가 아끼던 개발선인장
매실청 항아리
우리집 베란다에 놓인 친정엄마 화분

'그래~ 이거면 충분하다. 그래도 엄마가 좋아하시던 것을 이렇게라도 찾았으니 너무 좋다.'
엄마의 선인장 화분에서 빨간 꽃이 피고 호접난이 꽃이 필 때면 꽃을 보며 웃던 친정엄마 모습이 떠오르겠지. 그리고 내년 봄에는 친정엄마 항아리에 매실청을 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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