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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시어머님과 친정엄마의 행동을 닮고 싶지는 않다.

by 토끼랑께 2021. 10. 2.

얼마 전 추석명절을 맞이하면서 예전에 비해 여러 가지 음식을 준비하게 되었다. 건강이 많이 회복되기도 했고 연휴 동안 밖에서 음식을 사 먹기 어려우니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충분히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음식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있던 아들은 "엄마! 외할머니한테 몸도 안 좋으시면서 일 좀 그만하시라고 말리더니 요즘 엄마가 외할머니 같은 거 아세요?"라고 한다. 딸은 명절을 앞두고 전화를 해서 " 엄마 우리 간다고 무리해서 음식 많이 만들지 마~ 그러다가 엄마 병나면 안 되는 거 알지"라고 한다.

아들과 딸의 말에 " 외할머니처럼 음식 많이 하지 않았어. 꼭 먹을 거 몇 가지 밖에는 하지 않았어."라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서 피로가 누적되었는지 음식을 먹어도 소화를 못 시키더니 결국 소화불량으로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응급실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타 가지고 집에 돌아온 나를 맞이 하며, 딸은 앞으로는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식구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려고 했던 일이 몸에 무리가 가게 일을 넘치게 해서 결국 나도 힘들고 식구들에게는 걱정만 끼치고 말았다.

동탐호수공원

친정엄마가 무리한 일을 할 때마다 옆에서 힘들었던 나

친정엄마는 50대 초반부터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을 했었다. 집안일을 하시다가 "악!" 하는 소리를 지를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병원에도 다니시고 찜질방과 한의원을 수시로 다니면서도 집안일을 줄이지는 않으셨다. 

명절이나 동생들이 오는 날이 되면 며칠 전부터 김치를 담그고 먹을 음식을 장만하느냐 분주했고 그러고 나면 며칠씩 병원에 다니셔야 했었다. 그러다 보니 친정엄마가 무언가 일을 시작하면 나와 남편은 그 일을 도와야만 했고, 도와줄 사람이 있으니 친정엄마는 매번 일을 크게 벌리고는 했었다.

처음에는 아픈 친정엄마가 걱정이 되어서 덜 힘들도록 집안일을 도와 드렸었는데 나중에는 짜증만 났다. 무릎관절을 인공관절로 교체 수술을 했고 디스크 수술도 여러 번 해서 건강이 안 좋으면서도 무리하게 일을 하는 친정엄마가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직장일을 하고 퇴근해서 쉬고 싶은데 집에 오면 잔뜩 어질어진 집을 청소하는 일부터 해야 했기에, 힘들게 일하는 친정엄마가 안쓰러운 것보다 피곤한 몸으로 퇴근해서 뒷정리까지 해야 하는 것이 짜증스럽기만 했었다.

"엄마 음식 좀 제발 조금만 해 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왜 이리 많이 해? 그리고 일하고 나면 몸이 아파서 며칠씩 병원에 다녀야 하잖아. 그리고 나도 회사일만 해도 힘들은데 엄마가 일 벌이면 나까지 너무 힘들잖아."라고 하며 불평을 했다.

친정엄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는 올해가 마지막이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명절에 음식 장만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매번 무리한 일을 하고 난 후에 저혈당 쇼크로 응급실에 실려가고는 했었다.

그런 친정엄마를 보면서 나는 절대로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내 몸 힘든데 자식들 먹인다고 무리한 일도 하지 않을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로 자식들 귀찮게 도움을 청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결심을 했었다.

 

내가 친정엄마가 되고 나니...

그런데 내가 막상 딸을 시집보내고 나니 직장생활을 하며 살림까지 하는 딸이 늘 염려가 되었다. 딸이 혼자서 오래도록 자취를 했지만 거의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았고 내가 만들어 주는 음식만 갖고 가서 먹었었다.

혼자 생활하면서도 음식을 안 해 먹던 딸이 남편에게 음식은 제대로 만들어주는 지도 걱정이 되었지만, 직장생활과 집안일을 하면서 공부까지 하는 딸이 음식까지 만들어서 먹으려면 너무 힘겨울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 음식을 하면서 딸에게 줄 음식까지 생각해 여유 있게 만들게 되고 사위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게 되었다. 집에서 편하게 꺼내먹을 수 있는 밑반찬을 준비해 놓고, 김치를 여유 있게 담그고 된장국이나 찌개도 넉넉히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놓았다가 딸이 친정에 오면 큰 가방에 가득 담아서 보냈다.

맥문동

이제 내가 친정엄마가 되고 나니 친정엄마가 하셨던 일이 다시 생각이 난다.

친정엄마가 만드는 음식은 동생들에게 주는 음식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함께 사는 우리들이 먹을 음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매번 동생들 때문에 나까지 음식 만드는 일에 동원되고 있고 힘이 들다고 생각했다.

자식들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고, 손수 맛있게 만든 음식을 먹이고 싶었을 친정엄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때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병원에 다니는 일이 잦아진 친정엄마가 무리하게 일을 해서 병원에 다니는 모습이 속상하기만 했었다. 

 

그러면서 나는 친정엄마 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우선 친정엄마가 만들던 음식의 양에 비해 내가 만드는 양은 1/10도 안되었고 음식의 종류도 훨씬 적었다. 그리고 음식 준비를 하면서 남편과 아이들까지 내가 하는 일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그러니 식구들이 내가 음식을 하는 거에 대해 친정엄마하고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르신들의 기준은?

시어머님은 젊어서부터 워낙 깔끔하셔서 청소걸레까지도 행주처럼 하얗게 삶아서 사용하셨고 집안 대청소를 자주 하셨다. 시어머님은 음식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이지만 집안 청소는 병적이라고 할 만큼 종일 쓸고 닦는 분이다. 10년 전쯤부터는 대청소를 하신 후 갈비뼈에 금이 가는 일이 몇 번 있었고 2년 전에는 척추가 골절이 되기도 했었다. 대청소를 한 후 뼈에 골절이 생기는 일이 있으면서도 자꾸 무리하게 대청소를 하시는 시어머님을 이해한다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집안 청소를 좋아하는 시어머님을 말릴 수 없기에 지금은 시어머님이 대청소를 하고 싶어 하면 남편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무거운 물건을 원하는 장소에 다 옮겨주고 있다.

친정엄마도 몇 년 전부터는 무리하게 음식을 준비하고 나면 다음날 저혈당 쇼크로 병원에 실려가고는 했는데 우리가 무리하게 일하시지 말라고 하면은 당신은 절대로 힘들일 한 적이 없다고 하신다.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종일 있으면 내가 죽은 송장이지 산 사람이냐?" 하는 친정엄마 때문에 결국 하루에 조금씩 양을 정해 마늘 까기, 콩 고르기, 파 다듬기, 콩나물 다듬기 등 일거리를 드리고는 했었다.

 

시어머님과 친정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다 보면 다른 환자들 이야기를 듣게 되는 적이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온 자녀분이 어머님이 골절로 수술을 받은 후 당분간은 절대로 밭일을 하시면 안 된다고 병원에서 이야기를 했는데도 밭일을 하시다가 다치셔서 같은 부위를 세 번째 수술하러 왔다며 속상해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곡식이 다 때가 있는데 다 버리게 생긴 것을 그냥 둬~"하고 야단을 하신다.ㅠㅠㅠ

시어머님과 친정엄마와는 다른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되어야겠다

시어머님과 친정엄마 그리고 병원에서 만났던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이미 성장한 자식들을 위한다는 생각에 몸에 무리가 가는 것도 모르고 일을 벌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급실에 실려가던 친정엄마를 바라보며 안타깝고 속상했던 나의 마음을 기억해서, 이제는 나 때문에 속상해할 자식들의 마음을 생각해야겠다.

나의 마음이 그랬던 것처럼 노후에는 자식들 염려 덜하고 나 자신을 위한 삶에 좀 더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자녀들은 더 원하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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