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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시어머님과 나의 첫 추석 명절준비

by 토끼랑께 2021. 9. 4.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으니 차가운 공기가 들어온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이제 제법 가을이 가까이에 와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산책길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아도 그렇고 뒷동산에 아람들은 밤송이를 보아도 그렇다.
이제 2주만 지나면 추석 연휴가 시작이 된다.
코로나19 때문에 작년 추석명절부터 아들 3형제가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고 각자 성묘를 한 후 어머님을 찾아뵙는 것으로 명절 행사를 대신하고 있다.

낭아초

이북이 고향이신 시부모님

시부모님 두 분은 모두 고향이 이북이시다. 시아버님은 함경북도에서 6.25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중공군 개입으로 국군이 후퇴하게 되자 사촌형님과 두 분이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오셨다고 한다. 그 당시 부모님이 살아계셨었고 막내아들이었기에 그동안 제사와 차례를 지내지 않으셨다고 했다.
시아버님은 큰아들이 결혼을 했으니 이제 명절에 차례상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결혼 후 첫 명절을 맞이하며 시어머님과 함께 추석명절 준비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내게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돌콩

대청소 하기

시어머님은 추석이 돌아오기 2주 전부터 집안 대청소를 시작하셨다. 방마다 가구를 옮기고 뒤편 묵은 먼지를 닦아내고 거실에 장식장과 소파의 위치를 바꾸고 부엌 찬장과 냉장고를 들어내고 청소를 했다.
찬장 안에 있는 그릇을 모두 닦아 마른행주질을 해서 다시 넣어놓고 냉장고와 냉동실 안에 있는 음식을 모두 꺼낸 후 청소를 해야 했다.
평소에도 한 달에 한 번 부엌 대청소를 했었지만 추석명절을 앞두고 한 청소는 그 양과 범위가 더 넓었다. 모든 유리창과 액자까지 닦고 나니 대청소가 끝났다.

왕 고들빼기

추석명절 음식 만들기


김치 담그기

대청소가 끝나고 나니 시어머님은 명절에 먹을 김치를 담그려고 시장에서 배추와 무를 사 오셨다. 여름에는 배추 겉절이와 열무김치를 담그셨는데 명절이 다가오니 속박이 포기김치를 담그고 나박김치를 담그셨다.

밑반찬 만들기

명절에 먹을 밑반찬으로 시어머님은 황태를 10마리를 사서 방망이로 두들긴 후 물에 불려 뼈를 발라낸 후 갖은양념을 해서 재우는 황태 양념구이와 가자미식혜를 만드어 놓으셨다.

익모초

갈비찜 재우기

그 당시에는 명절에 갈비 선물이 많이 들어왔었는데, 요즘처럼 절단해서 케이스에 담아오는 것이 아니고 갈비 한 짝을 통째로 포장지에 싸서 보내왔다. 그러면 다시 단골 정육 정에 갈비를 갖고 가서 절단을 해와서 살이 많은 부위는 갈비찜용으로 나머지는 갈비탕용으로 분리한다.
갈비에 붙어 있는 기름기를 떼어 내고 물에 담가 핏물을 뺀 후 큰들 통에 물을 붓고 앞마당 한쪽에서는 갈비탕을 끓이기 시작한다. 간장에 갖은양념을 넣어 만든 갈비 양념장에 갈비찜을 재워서 하루 냉장고에서 숙성을 시킨 후 큰 솥에 담아 푹 익혀야 했다.

둥근잎유홍초

전 부치기

친정이 종갓집이어서 친정엄마는 며칠 전부터 엄청난 양의 음식을 준비하시고는 했는데, 시어머님이 준비하는 전의 양은 친정엄마가 준비하던 전의 양보다 2배가 넘었다.
전의 종류는 기본 녹두전, 밀전, 동태전, 동그랑땡, 육전, 첩 엽전, 허파 전, 고추전, 두부전, 고치 전...
친정에서는 작은엄마 2분과 당숙모 2분까지 모여 전을 부쳤는데 혼자서 다 해야만 했다.
어머님이 재료를 준비해서 주면 앉아서 전을 부치는데 하루 종일 부쳐야만 했다. 한복을 입은 채 전을 부치는데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냄새에 질려서 너무 힘들었다. 그때야 말로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도 못 하고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전을 혼자 부쳤다.
시어머님은 차례상에 올릴 전을 따로 담아 놓으신 후 명절을 지내지 않거나 본가에 못하는 집에 전을 나누어 주셨다. 이웃에 넉넉히 나누어 주셨는데도 많은 양이 전이 남아 명절내내 먹고도 남았었다.

송편 만들기

시어머님은 송편을 빚기 위해 반죽을 준비하셨다. 그런데 옆에서 보니 친정엄마가 하는 방법 하고는 다른 듯했다. 시어머님은 반죽이 너무 질게 되어서 결국 몇 개만 만들다가 포기하고 말았었는데 시어머님은 송편을 처음 만들어 보신 거라고 했다.

나팔꽃

추석 차례상

추석명절 아침 준비한 음식을 한상 가득 차려놓고 시아버님과 아들 3형제가 처음으로 차례를 지냈다.
시어머님은 며칠 동안 열심히 준비한 음식이 빠트린 것이 혹시라도 없나 엄청 신경을 쓰셨다.


시부모님은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어떠한 격식보다는 생전에 부모님이 좋아하셨던 음식과 고향에서 드셨던 음식 위주로 차례상에 올리셨다. 아버님은 며느리를 얻고 서야 처음으로 명절에 차례를 지내시고는 한동안 차례상 앞에 앉아 계셨다.

남편 친구들의 방문

차례를 지낸 후 아침밥을 먹은 상을 치우고 나니 남편 친구들 여러 명이 찾아왔다.
시어머님은 서둘러 준비한 음식을 한상 가득 차려내어 주셨다.
남편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명절이면 친구들이 와서 종일 음식을 먹으며 놀다 가고는 했었다고 한다.
시어머님은 친척이 없어 명절이 적적한데 아들 친구들이 오니 온갖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넉넉히 대접해 오셨다고 한다.
남편이 결혼을 했는데도 미혼인 친구는 물론 결혼한 친구들까지 와서 저녁까지 먹고 갔었다.

개망초

결혼 후 첫 명절인 추석명절을 치르고 나니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집안일이 익숙하지 않아 서툰 것 투성이던 결혼 1년 차에 맞이했던 추석명절은 모든 것이 너무 힘들었다.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면서부터는 시어머님이 하시던 모든 일을 내가 도맡어하고는 있는데 작년 추석명절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해 제대로 된 명절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올 추석명절이 되어도 3형제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래도 성묘는 가야 하고 긴 연휴로 가족들이 집에 여러 날 있을 테니 다음 주부터는 시장을 봐서 미리 음식 준비를 해야 할 듯하다.
시아버님이 좋아하시는 갈비와 조기 녹두전은 반드시 만들어야 해야 하고 이번에는 시어머님의 특기인 황태 양념구이를 만들어야겠다.
다음 주부터는 추석명절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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