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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투병기

[암 투병기] 43. 암수술과 항암치료를 마친 후 딸과 떠났던 동유럽 여행

by 토끼랑께 2021. 9. 12.

대장암으로 3번의 수술을 마친 후 체력이 바닥이 나면서 이러다가 영영 회복을 할수 없을 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그래서 만일을 생각해서 몇 가지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그런데 다행히 그 무렵부터 시작한 한방병원 치료와 식이요법 실천으로 조금씩 기력을 찾아갔고 3개월에 한 번씩 하는 정기검사에서 암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3차례의 암수술을 받았었기에 언제고 다시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두브로브니크 성벽

딸과 동유럽여행 계획 세우기

그해 여름 딸아이가 한 달 정도 회사를 쉬게 되는 일이 있었다. 그런 기회가 쉽지 않았기에 나는 딸과의 여행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 방송에서 '꽃보다 누나'를 시작으로 '꽃보다 할배'가 방영이 되면서 유럽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지인이 카카오스토리에 크로아티아 여행을 하면서 플리트비체 호수에 간 사진을 올려놓은 것을 보게 되었다.너무 아름다운 모습에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으로 가는 여행은 나뿐아니라 그동안 간호를 하느냐 애썼던 딸에게 좋은 선물이 될 듯해서 딸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딸은 우선 담당 선생님에게 먼저 의논을 해보자고 했고, 병원 진료 시 담당의사 선생님에게 해외여행을 가도 괜찮을지 의논을 하니 다녀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동유럽 여행을 위한 사전 준비

딸은 오랫동안 고민하며 알아본 후 '크로아티아/ 발칸+동유럽 4개국 9일 투어'를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여행사 가이드에게 내가 암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알렸고 예약된 항공사에서도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인천공항에 병약 승객이 패스트트랙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여행을 다니면서 두 사람이 입을 옷을 날짜별로 같은 계열 색의 옷으로 선정해 커플룩을 입자고 했고, 딸은 수술로 몇 년간 받지 못했던 네일아트도 받게 해 주었다.
한방병원에서는 여행 중 필요한 비상약을 처방 받았다. 그 당시 식이요법으로 10가지 잡곡으로 밥을 지어먹고 있었는데 여행 중에 먹을 수 있도록 10가지 잡곡을 미숫가루로 만들어 진공팩에 1회분씩 포장을 했다.
딸은 딸대로 나는 나대로 처음 떠나는 유럽여행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동유럽 여행길에 오르다.

처음으로 동유럽 여행을 딸과 함께 떠나게 되었다. 딸이 미리 알아보았던 병약 승객을 위한 패스트트랙 서비스를 이용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면세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유 있게 들어가 탑승구 주변에서 편히 쉬다가 탑승할 수 있었다.
첫 여행지인 비엔나에 도착을 하자 비가 내리긴 했지만 유럽의 도시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니 모든 게 신기하고 아름답기만 했다. 쉔부른 궁전 내부를 관람하고 궁전 정원을 돌아보았는데 규모가 엄청 크고 아름다웠다.
케른트너 거리에 도착해서 유럽에서의 첫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준비해 간 미숫가루를 물에 개어서 밥을 먹듯 씹어서 먹은 후 다른 음식을 골라서 먹었다.

쉔부른 궁전과 정원

식사 후 우산을 쓰고 케른트너 거리를 돌아다녔고, 딸과 카페에 들려 비엔나커피를 주문해서 먹어보았다. 예전에 다방에 가면 비엔나커피라는 메뉴가 있었는데 맛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커피를 마신 후 성 슈테판 성당에 갔는데 규모에 놀라고 오래된 역사에 놀랐다. 그날 투어는 슬로베니아 마리보르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쳤다.

성 슈테판 성당

2일째 되는 날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이동을 했다. 버스를 타고 나라별 이동을 하며 입국신고를 하는 것과 여권에 도장이 찍히는 것이 신기했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 도착해 자그레브 대성당에 갔다. 마침 미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는 듯했다. 자그레브 대성당을 본 후 성마르크 성당에 갔는데 규모가 작으면서도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성마르크 성당 주변에 시장을 간 기억이 있는데 그날 처음으로 납작 복숭아를 보았다. 몇 개 구입해서 먹었는데 달고 맛있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3일째 되던 날 두브로브니크 성벽길 투어를 했다. 빨간 지붕의 돌로 지어진 두브로브니크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꽃보다 누나'의 장면이 기억나며 마치 내가 "꽃보다 누나"의 누나가 된 기분을 누리기도 했다.

비엔나

마지막 여행이 된 유람선 투어

성벽 투어를 마치고 유람선 투어가 시작되었다. 배를 타고 누드해변을 지나는데 딸은 무언가 분주해 보였다. 누군가 계속 카톡을 주고받는데 심각한 표정이었다. 내가 쳐다보니 회사일이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유람선 투어를 마치고 점심을 먹는데 딸이 가이드와 둘이서 무슨 이야기인지를 나누었다. 점심식사 후 스르지산 전망대 투어를 가기로 되어있는데 딸이 예약에 문제가 있어 우리는 전망대에 갈 수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쇼핑이나 하자며 두브로브니크 상점에 들려서 구입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사라고 했다. 나는 여행 초반부터 물건을 사면 갖고 다니기 힘들다며 싫다고 했다. 딸은 내 안색이 안 좋다며 커피숍으로 데리고 갔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니 딸은 내게 "엄마 우리 이번 여행은 이제 여기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말을 했다. "엄마가 체력이 괜찮을 줄 알았는데 3일을 지내보니 더 이상 진행하는 게 엄마한테 무리일 것 같아 여기서 멈추려고 해"라고 말했다.

딸의 과잉보호로 마음이 불편했던 나

나는 순간 화가 났다. 여행 내내 딸은 내게 조금 무거운 짐도 들지 못하게 하고 나를 어린아이 보호하듯 과보호하더니, 나는 괜찮은데 여행을 멈추자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딸에게 너는 나를 너무 과보호한다며 화를 내는데 딸에게 전화가 왔다. 딸은 멀찍이 가서 통화를 하고 오더니 나를 진정시키고는 그제야 사실 이야기를 했다.
"엄마 놀라지 마 이미 내가 필요한 조치는 다했으니 엄마는 나랑 두브로브니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돼... 지금 외할머니가 많이 위독하시대 고비는 넘겼지만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집으로 돌아가야 해."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성 마르크성당

친정엄마와의 이별이 지금 이여서는 안되는데

딸은 남편으로부터 친정엄마가 위독하다는 문자를 받고 가이드와 의논을 했는데 한국이 밤이여서 여행사에서 당장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딸은 직접 회사 후배에게 연락해 두브로브니크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표를 구입하게 했고 비행기표가 확보가 되자 내게 사실 이야기를 해주었던 거였다.
'엄마가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돌아가시면 안 되는데 아직 엄마랑 풀어야 할게 너무 많은데... 이대로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하나... '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 당시만 해도 나와 친정엄마는 애증의 관계에서 증이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3일 만에 끝나버린 유럽여행

그렇게 딸과의 동유럽 여행은, 3일째 되는 날 가장 가고 싶어 했던 플리트비체 호수를 보지도 못한 채 울면서 돌아와야만 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친정엄마는 두 번의 심정지가 왔지만 다행히 심폐소생술로 살아나셔서 중환자실에 계셨고 면회시간이 되지 않아 몇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면회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딸과 나는 혹시라도 친정엄마가 돌아가시면 상을 치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빨간색으로 칠했던 손톱을 지우는 일을 먼저 했다.

친정엄마와의 관계 회복

친정엄마가 오래도록 건강이 안 좋으셨지만 내 마음속에는 친정엄마가 쉽게 돌아가시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다행히 엄마는 회복이 되셨고 그때부터 신장투석을 하면서 5년간을 더 사셨다.
그 일을 계기로 처음으로 친정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었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기는 했지만 친정엄마와 나는 애증의 관계를 청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가신 다음에 후회하지 말자는 생각에 친정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게는 그 일이 엄마와의 관계회복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가끔 친정엄마에게 딸과 내가 우리 다시 동유럽여행 보내달라고 농담을 하면 엄마는 엉뚱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곤 하셨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내가 가고 싶었던 플리트비체 호수와 딸이 가고 싶어 했던 프라하를 가보지 못했던 것은 너무도 아쉽기만 하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딸에게 긴 휴가가 생기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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