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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투병기

[암 투병기] 42.암 요양병원에서 만난 암환우 '날씬이 언니'

by 토끼랑께 2021. 8. 27.

폐 전이로 양쪽 폐를 흉강경으로 쐐기 절제술을 한 후 다시 12번의 항암치료를 받았다. 2번째 항암을 앞두고 집 근처에 있는 암 요양 병원에서 지냈는데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게 너무 많았다.
폐를 수술하고 나니 공기가 좋고 치료와 시설이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항암치료를 다 마친 후 가 있을 암 요양병원을 정하기 위해서 10회 차 항암치료를 마친 후 전남 담양에 있는 암 요양병원 2곳에 사전조사를 다녀왔다.
남편과 1박 2일로 일정으로 직접 가서 병원 위치와 시설 그리고 식사까지 미리 먹어 본 후 갈 곳을 결정했다.
그리고 12번째 항암을 마친 후 바로 담양에 있는 암 요양병원으로 내려가서 입원을 했다.
암 요양병원은 산 중턱에 있었는데 암요양병원 산책로가 길이 원만하고 편백나무가 많아 공기도 좋았다. 암 요양병원 음식은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죽과 누룽지부터 다양한 메뉴에 음식을 제공해줘서 입맛에 맞추어 먹기에 좋았다.

암 요양병원 찜질방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집에서 3시간 가까이 떨어진 곳에 입원해서 나름 잘 지냈다.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는데 며칠이 지나니 그런대로 지낼만했다. 낮에는 치료와 운동을 했고 저녁에는 병실 바로 앞에 있는 황토찜질방에 가서 찜질을 했다. 황토찜질방은 벽난로에 장작을 태워 그 열기로 찜질을 했는데 벽난로 앞에 암환우들이 옹기종기 모여 찜질을 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저녁에 찜질방에 오는 암환우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찜질방에 오는 암환우들끼리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영산포

날씬이 언니

암환우들 중 자신을 '날씬이 언니'로 불러 달라는 체격이 좋은 50대 후반의 암환우가 있었다. 자궁암환자였는데 시원스러운 성격에 유머감각이 있어 그분 덕분에 찜질방에는 늘 웃음이 가득했었다.
'날씬이 언니'는 암환우들에게 호주에 사는 동생을 통해 건강식품을 구입해서 판매하기도 했었다. 그 언니 때문에 나도 프로폴리스를 구입해 한동안 먹었던 기억도 있다.

암환우들 중 주말이 되면 외출증을 끊고 집에 다녀오기도 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거나 집이 멀은 환자들은 주말도 병원에서만 지내야 했었다. 한 번은 주말에 아침식사를 하고 병실로 돌아오는데, 날씬이 언니가 소나무 아래에 있는 의자에 앉아 옆에 있는 암환우에게 "입맛이 없어 밥을 먹을 수가 없네... 차라도 있으면 나가서 밖에 음식이라도 먹으면 기운이 날 것 같은데 차도 없으니 나갈 수도 없고..." 하며 넋두리를 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오지랖이 발동을 했다.
"날씬이 언니 그러면 점심시간에 나랑 같이 나가실래요?"
나도 오랜만에 병원 음식이 아닌 일반음식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내차로 가서 먹고 오자고 했더니 너무 좋아했다.
병원에 외출 허락을 받은 후 내차로 날씬이 언니와 같은 방 암환우까지 세명이 담양 유진정에 가서 청둥오리 전골을 먹었다. 날씬이 언니는 병원밥은 한수저 먹는 것도 힘들다며 못 드시더니 정말 맛있게 잘 드셨다.
점심을 먹고 밥값을 계산하려고 했더니 날씬이 언니가 깜짝 놀라며 자신이 내야 한다고 내가 계산을 못하게 했다.
"이렇게 데리고 나와준 건 만 해도 고마운데 별소리가 다 많네~" "나를 염치없는 사람을 만들려고 그러는가" 하면서 현찰을 꺼내 계산을 했다.

나주 연산포 자기수위표

그 후로 날씬이 언니는 항암치료를 하러 서울 병원에 다녀올 때면 집에서 김치와 밑반찬을 만들어 갖고 왔다. 식사시간이 되어 식당에 가면 먼저 와있다가 "평택! 평택!" 하고 부르며 오라고 손짓을 한다. 가보면 김치랑 밑반찬을 주려고 부른 거였다. 날씬이 언니가 담근 김치는 정말 너무 맛있었다. 예전에는 젓갈이 많이들은 김치는 잘 먹지를 못했었는데 날씬이 언니가 담은 김치를 먹으면서 젓갈들은 김치의 맛을 알게 되었다.
날씬이 언니는 어느 날 항암치료가 다 끝났다며 이제 집에 가서 직접 음식을 해서 먹어야 기운이 날 것 같다고 먼저 퇴원을 했다. 퇴원던 날 입원한 암환우와 병원 직원들이 다 먹을 수 있는 양의 떡을 맞춰서 식당에 놓고 다 같이 먹게 하고 퇴원 인사까지 했다.
암환자들과 인사를 하고 가면서 그동안 정이 들었는지 "동생 꼭 건강 회복 혀~ 혹시 또 만나게 되면 좋은 일로 보게"하며 나를 꼭 안아준 후 가셨다.

영산포 황포돛배

2년 만에 다시 만난 '날씬이 언니'

그곳 암 요양병원에서 3개월을 지낸 후 퇴원을 했고, 바로 폐 전이로 수술과 항암치료를 하느냐 고생을 하다가 2년 후에 그 암 요양병원에 다시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입원한 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날씬이 언니가 다시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건강이 많이 안 좋아서 방배식을 받고 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날씬이 언니를 보기 위해 병실로 찾아갔는데 날씬이 언니의 모습이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체격이 좋았던 모습은 없어지고 몰라볼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나를 보더니 몸이 안 좋아져서 다시 입원한 거냐며 걱정을 하신다.
대상포진이 걸려서 고생을 해서 면역력 올리는 치료를 받으려고 입원했다고 하니 조심하라고 한다.

영산강

날씬해지고 싶은 마음에 성형수술을 한 날씬이 언니

"그런데 왜 이렇게 몸이 야위셨어요?"
"내가 00년이지... 내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었나 봐~"
날씬이 언니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항암치료를 마친 후 암 요양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지내면서 몸이 많이 회복이 되었었다고 한다.
그런데 평생 동안 콤플렉스였던 큰 가슴을 축소수술을 했다고 한다.
그 후 몇 개월 되지 않아 난소로 암이 전이가 되었고 그 후로 급격이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영산포에서 바라본 영산강 석양

아무리 평생 동안 콤플렉스였어도 암환자가 그런 큰 수술을 했다니 말문이 막혔다.
스스로 자책하며 후회하는 분한테 해줄 말이 생각나지가 않았다.
한 달 후 내가 먼저 퇴원을 하게 되었는데 퇴원하던 날 시내에 나가 날씬이 언니가 좋아하는 빵을 사 갖고 가서 퇴원한다고 인사를 했다.
언니는 내게 퇴원해서 절대로 자신처럼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 얼른 건강 회복해서 퇴원도 하시고 언니가 만든 김치 먹고 싶으니 김치 담아놓고 부르시라고 했더니 "그럴 날이 올까?" 하며 눈물을 보인다.
그게 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몇 달 후 같은 암 요양병원에 입원했던 다른 암환우를 통해 날씬이 언니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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