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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투병기

[암 투병기] 40. 항암치료로 입원 중 만난 암환우들

by 토끼랑께 2021. 8. 11.

대장암 진단을 받고 세 번의 수술과 24번의 항암치료를 받느냐고 병원 입원생활을 여러 번 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낯가림 없이 쉽게 친해지는 성격이면서도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은 한 병실을 사용하는 암환우와 대화를 나눠 본일이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항암주사를 맞기 시작하면 온 몬에 힘이 빠지고 속이 메스꺼워 음식을 거의 먹을 수 없다 보니 대화 나눌 기력조차 없어서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박 3일간 하는 항암치료를 24회를 하다 보니 그중에 지금도 가끔 기억나는 암환우가 있다.
지금 생각해도 안쓰러웠던 암환우도 있었고 미안했던 암환우도 있었다. 그리고 고마웠던 암환우도 있다.

미리내 성지내 성요셉 성당

나를 너무도 안쓰러워했던 암환우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고생을 경험하다 보니 나이가 2,30대의 환자가 입원을 하면 젊은 나이에 고생하는 것이 너무도 딱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고 그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장암 수술 후 12회의 항암치료를 마친 후 폐로 전이가 되어 6개월 만에 양쪽 폐를 쐐기절제술을 했다. 대장 수술에 비해 통증이 심해서 무통주사를 너무 자주 눌렀더니 속이 메스껍고 두통이 심했다. 결국 무통주사를 제거하고 수술 후 통증을 견뎌내야만 했었다.
눕지도 못하고 앉아 있으면서 순간 찌르는 듯한 예리한 통증이 올 때마다 참지 못하고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때마다 옆 침대에서 항암치료를 하는 암환우분이 "에구 어째, 에구 많이 아픈가 보네, 젊은 사람이 딱해라..." 하며 진심으로 안쓰러워하신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암환우분은 보호자 없이 지방에서 혼자 올라와 1박 2일 동안 항암치료를 받으시는데, 당신도 항암치료를 받으시면서 아직 젊은 사람이 이렇게 고생을 해서 어떡하냐며 걱정을 해주셨다. 항암치료를 마치고 퇴원하시면서 아직 젊은데 잘 견뎌내서 꼭 이겨내라고 당부하고 가셨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던 암환우

폐 전이로 양쪽 폐를 수술한 후 첫 번째 항암치료를 받던 날 같은 방을 썼던 암환우가 가끔 생각이 나는데 미안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다니는 듯한 젊은 엄마였는데, 얼굴 표정이 무척 어두웠고 아이한테 엄청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암환우와 눈이 한번 마주쳤는데 냉랭하게 얼굴을 돌려버렸다. 마음속에 화가 가득 차 보였다.
그리고 저녁 9시쯤 자기는 불을 안 끄면 잘 수가 없다며 불을 꺼달라고 했다.
딸은 내가 계속 구토하러 화장실을 자주 가니 불안해서 불을 끄고 싶지 않아 했는데 내가 그냥 끄라고 했다.
어느 순간 딸도 피곤한지 잠이 들었고, 나는 구토를 할 것 같아 혼자서 불을 켜지 않고 화장실을 가다가 순간 기절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 바로 의식이 돌아와 일어났는데 놀란 딸아이는 내가 어두워서 넘어졌는 줄 알고 같은 병실 암환우에게 "아직 10시도 안되었는데 불을 끄라고 해서 우리 엄마 넘어졌잖아요." 하며 화를 냈다.
다음날도 내가 계속 구토를 하다가 결국 침대에서 기절을 한채 발작까지 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조금 있다 보니 옆에 있던 암환우가 다른 병실로 이동해 버리고 없었다.
그때는 딸과 나도 경황이 없어 그 암환우 입장에서 생각을 못했는데, 옆에서 계속 기절과 발작까지 하니, 무섭고 겁이 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생이 같이 와있는 것을 보니 암환우를 돌봐줄 어른이 없는 것 같았다. 얼굴이 너무 어두웠던 것도 힘든 상황에 있었던 것 같아 가끔 잘 치료를 마쳤을 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털별꽃아재비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던 암환우

첫 번째 항암주사를 맞으면서 기절과 발작까지 한 후에 3주 만에 두 번째 항암을 하게 되었는데,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항암주사를 맞으며 눕지도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주치의는 그대로 진행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딸에게 나를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게 하자고 했었단다. 의논 끝에 부작용이 의심되는 항암제를 제외하고 항암주사를 맞게 했더니 구토 없이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다시 2주 후 세 번째 항암치료를 하러 입원을 했는데, 제외시킨 항암주사제를 빼고 하면 항암효과가 너무 떨어진다며 천천히 주사할 테니 이번에는 다시 제외시켰던 항암주사제를 맞아 보자고 했다.
그래서 다시 속도를 최대한 천천히 줄여서 항암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그때 나와 같은 병실에 입원했던 암환우는 난소암으로 표준치료를 다 마쳤는데 2년 만에 전이가 되었고 예후가 좋지 않다는 소견을 받고 입원해 있었다.
자신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얼굴은 아주 평온했고 항상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붉은 토끼풀


항암치료 2일째까지 다행히 구토를 하지 않았고 구토를 하지 않으니 기절을 하지도 않았다. 2일째 밤이 지나고 새벽에 잠에서 깨었는데 입안이 너무 써서 양치질을 하고 싶었다.
저녁에 딸이 잠들기 전에 내게 "밤에 혹시라도 화장실에 갈 일이 있으면 절대로 혼자 가지 말고 나 꼭 깨워! 알았지?" 하고 당부를 했었다. 그런데 새벽에 곤하게 자는 딸의 모습을 보니 차마 깨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구토가 나는 것도 아니고 양치질을 하러 가는 거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살금살금 화장실에 들어가서 양치질을 하는데 순간 구토가 나오려고 했다. 그 순간 '어 나 또 기절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는데, 딸의 비명소리에 눈을 뜨니 내가 어느새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뒤통수를 만져보니 머리에 조그마한 혹이 생겨 있었다. 기절하는 순간 쓰러지면서 변기에 머리가 부딪혔던 것 같다.
주치의까지 와서 상태를 보더니 바로 뇌 CT를 찍어봐야 한다고 했다.

누리장나무꽃


그 순간 더 이상은 항암치료를 받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이제 더 이상 항암치료받지 않을래 더는 못하겠어." 딸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 순간 치료를 포기한 나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그리고 옆에서 애쓰는 딸에게 미안해서 소리 내서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옆 침대에 있던 암환우가 다가와서 " 언니! 제가 여태껏 남을 위해 기도해본 적이 없는데 언니를 위해 기도해주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하고 말을 걸어왔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내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를 해주었는데 내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암환우가 내게 음악 선물을 보내 주었다.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복음 성가인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2,3달 밖에 안 되는 내게는 처음 듣는 찬양이었지만 큰 위로가 되었고 지금도 나의 핸드폰 벨소리로 사용하고 있다.

https://youtu.be/adyjSq3 yFcc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그 날이후로 다시 만나거나 연락을 해본 적은 없지만 핸드폰 벨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었던 그 암환우가 생각이 난다.
그 후로 나도 나와 만났던 암환우의 이름을 메모해와서 기도를 하고는 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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