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장암 투병기

[암 투병기]44.대장암으로 치료를 받으며 몸과 마음이 힘들던 시절

by 토끼랑께 2021. 9. 23.

대장암으로 암수술을 받고 입원을 하니 친구와 직장동료들 그리고 친인척들까지 하루에 몇 팀씩 병문안을 왔었다.
병문안을 와서 이런저런 용기를 주는 말을 해주고 상태도 물어보며 몸 관리 잘하라고 당부를 한다.
먼길 병문안을 위해 온 이들이 고마워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잘 이겨낼 테니 걱정 말라며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환자 같지도 않은 걸 보니 금방 나을 것 같네." 하며 큰소리로 함께 웃었다.
그때만 해도 처음이라 암에 대해 무지한 부분이 많기도 했고, 마음속으로 빨리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에 "암 제거 수술을 했으니 나 이제는 암환자 아니야~" 하며 마치 모든 치료가 끝난 사람처럼 말을 했었다.
수술을 받고 한 달 후부터 항암치료가 시작되자 현실은 녹녹지 않았다. 메스꺼움과 구토로 음식을 먹지 못했고 항암치료 후 몸이 너무 괴로워서 '이 모든 상황이 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며

항암치료가 거듭되자 회사에서는 자리를 계속 공석으로 둘 수가 없다며 업무를 대신할 사람을 뽑으려고 해도 인원 규정 때문에 할 수 없으니 스스로 퇴사해주었으면 하는 뜻을 다른 직원을 통해 전해왔다. 항암치료를 너무 힘겹게 받는 중이라 출근을 할 수가 없어 결국 마지막 12번째 항암치료를 남겨두고 회사에 나가 사표를 쓰게 되었다.
사표를 제출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마음속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맡은 일을 좀 더 잘해 보려고 애쓰고 노력하던 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보다 몇 개월 전 갑상선암에 걸렸던 동료는 한 달 병가 후 복귀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대장암으로 진단받고 항암치료까지 받으니 퇴사를 하게 하는 회사가 야속했다. 아마도 내가 회복되기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회복되어 출근하더라도 예전처럼 일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해 가을 회사 다닐 때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딸을 결혼시키게 되었다.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당연히 결혼식에 회사 직원들이 많이 참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가 딸을 시집보내던 날 그 어느 날 보다 공들여 화장을 하고 옷을 신경 써서 차려입고 결혼식에 참석을 했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 앞에 보란 듯이 더 씩씩하게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건강함을 과시했다.
더러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건강해 보여서 보기 좋네. 이제 다시 일해도 되겠네." 하는 농담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풍뉴가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힘든 상태인데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것도 아니면서 그런 행동을 했던 내가 지금 생각하면 안쓰럽기만 하다.
그 당시 몸의 상태는 겉보기에는 멀쩡했지만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몸의 온 관절이 쑤시고 아팠었다. 말초신경병증으로 손과 발이 차가운 공기나 물에 닿으면 바늘에 찔리는 듯한 고통이 있었고, 눈을 감으면 중심을 잡지 못해서 샤워를 서서하지 못하고 욕실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샤워를 해야 했었다.
그런 몸으로 다시 일을 할 수도 없었으면서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기에 그런 행동을 했었던 듯싶다.

풍뉴가

어떤 말이든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던 마음

얼마 후 이번에는 초등학교 동창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집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문상을 가게 되었다. 사실 문상보다는 나의 건재함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더컸었다. 먼저 도착해서 있던 동창들이 반갑게 맞이하며 몸은 어떠냐고 질문을 쏟아내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자 동창 중 같은 마을에 살던 여자 친구가 "재가 무슨 환자라고 난리들이냐? 멀쩡하기만 한데"라고 했다. 그 순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도 싫었고, 환자가 아니라며 친구들에게 뭐라고 하는 친구도 싫었다.
잠시 후 화장실에 가는 것처럼 조용히 자리를 떠서 집으로 돌아왔다.

암 진단을 받고 회사까지 그만두고 나니 이제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에 속상했고, 환자로 바라보는 시선이 싫었다. 그리고 나의 아픔을 전혀 이해해주지 않는 듯한 말도 싫었다.
그 후부터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고는 만나지도 않았고 가족들하고만 생활을 하고 외출과 만남은 자제하게 되었다.

그해 12월 검사에 페로 전이된 암이 사이즈가 커지고 양쪽 폐로 퍼져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다. 결국 한 달 후인 이듬해 1월에 양쪽 폐를 수술받게 되었다.

스트레스로 예민해진 몸과 마음

폐 수술을 받은 후 다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는데 처음 항암치료 시 메스꺼움으로 구토를 경험했던 나는 항암제를 투여받기 시작하자 마음이 불안해서 똑바로 누워있지를 못하고 침대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기도 했었다. 항암치료 첫날 메스꺼움으로 여러 번의 구토를 하다가 기절까지 하게 되었다. 그 후로는 항암치료로 입원을 하면 구토하다 기절할까 봐 더욱더 긴장하고 불안해했다. 담당 주치의는 너무 예민하고 불안해하는 나를 정신과 상담을 받게 하자고 딸에게 권유하기도 했다.
암환우들은 작든 크든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전이나 재발에 대한 염려가 마음속에 항상 남아있어 다시 일을 시작하는 데에도 망설이게 되고 한참 일할 나이에 일을 하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에 힘들기도 하다.
겉으로는 태연해 보여도 주변 상황의 변화로 몸과 함께 마음도 이렇게 병들어 가고 있을 수 있다.

회복의 시간

다행히 그 무렵 딸의 간곡한 권유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차츰 마음에 안정을 찾아갔고 남은 항암치료도 끝까지 잘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암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매주 한 번씩 봉사활동을 오는 분이 내게 감사노트를 작성할 것을 권유했었다.
처음에는 이 상황에 무슨 감사를 해야 하나 했는데, 아침에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 눈을 뜨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되었고, 파란 하늘을 보게 된 것에 감사하게 되었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저녁 잠자리에 편안히 눕게 된 것도 감사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했고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이런 휴식의 시간을 주심에 감사했다.
하루하루 감사할 내용이 늘어났고 매일이 감사함으로 행복하다.



사진은 여름 어느 날 대전역 소제동 카페 모습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