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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평생잊을 수 없는 앞집 언니와 20년만의 만남

by 토끼랑께 2021. 9. 1.

몇 년 전 담양에 있는 암 요양병원에 지내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20년 전 앞집에 살던 언니가 카톡 친구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서로 마주 보는 앞집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였는데 남편이 군인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헤어지게 되었다.
미국으로 간 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5년 만에 전화가 왔었는데 한국에 왔다가 가는 길에 전화한 거라고 했다. 그 이후로도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왔다가 가는 길에 안부 전화를 했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연락이 끊어져 소식을 모르고 있었다.
가끔씩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카톡 친구에서 언니의 이름을 보게 되어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문자를 남겼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미국에 있는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소리만 들어도 너무 반가웠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다가 암에 걸려서 암 요양병원에 입원해서 있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며칠 후 한국에 올 거라면서 한국에 오면 나를 보러 암 요양병원으로 먼저 오겠다고 했다.

낭아초

20년 만의 만남

언니가 온다는 날에 맞추어 암 요양병원에서 가까운 한옥민박을 예약해놓고 광주터미널로 언니를 마중 나갔다.
드디어 저만치서 언니가 환하게 웃으며 나타났다. 너무 반가워 서로 얼싸안고 한참을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반가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차로 이동하면서 서로의 가족들 안부를 묻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데 2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늘 함께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언니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며 내가 입원해 있는 암 요양병원에 와서 병실을 들어와 보고, 병원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언니는 머무는 암 요양병원 시설과 음식이 좋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언니는 나를 만나기 전 건강이 많이 안 좋을까 봐 걱정을 많이 했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좋아 보여 너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언니도 유방암을 진단받고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만났을 때 언니가 전보다 야윈듯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인 듯했다. 서로가 서로의 아픔을 알다 보니 더 마음이 갔다.

한옥민박 다담

20여 년 전 앞집으로 이사 온 언니는 항상 밝게 웃고 어른들에게도 인사를 잘해서 시부모님도" 앞집 00 엄마는 참 언제 봐도 깍듯하게 인사도 잘하고 사람이 성품이 좋아 보인다." 하시며 칭찬을 하셨다. 그래서인지 다른 이웃들과 어울리는 것은 싫어하시면서도 앞집 언니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었다.

다담 황토방

 

언니와의 하룻밤

예약해 놓은 한옥민박에 도착해서 한옥민박 사장님에게 20년 만에 미국에서 친구가 왔다고 소개하니 소중한 인연이 보기 좋다며 차와 음악을 대접하고 싶다며 안채로 들어오라고 했다.

한옥펜션 다담 안채

바깥 사장님은 본인이 갖고 있는 LP 판 중에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곡을 선정해서 틀어주었다. 그리고 안 사장님까지 합류해 언니와 나의 예전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었다.

한옥민박 다담 안채

앞집 언니는 시부모님과 결혼한 시동생 부부까지 같이 살며 부엌일과 집안일에 정신없이 사는 내가 안타까웠다고 한다. 젊은 사람이 집안 살림에 바빠 외출도 안 하고 자기만의 시간도 없는 듯해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위해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언니는 평소에도 음식을 만들어 시부모님 드시라고 자주 갖고 왔었다. 그런 언니의 마음이 고마워서 시어머님도 우리 집에서 김치를 하거나 별식을 만들면 앞집 언니에게 갖다 주시고는 했다. 꽃꽂이 수업을 다니며 집안에 항상 꽃꽂이를 해놓는 언니를 보고 칭찬하는 시어머님 말끝에 큰며느리도 같이 다니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언니 덕분에 배우기 시작한 꽃꽂이

앞집 언니가 시어머님에게 여러 번 말씀을 드린 덕분에 나도 일주일에 한 번씩 꽃꽂이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꽃꽂이 전시회

꽃꽂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매주 집에 새로운 꽃을 꽂아 놓으니 시부모님도 좋아하셨다. 1년 정도 열심히 다닌 후 언니와 꽃꽂이 전시회에도 함께 참석했었다. 앞집 언니 덕분에 결혼 후 처음으로 나만의 시간을 내어서 취미생활을 할 수 있었다.

언니와의 즐거운 추억

앞집 언니에게는 남매가 있었는데 우리 아이들과 잘 어울려서 놀았다. 그리고 언니네 가족이 여행을 갈 때 우리 아이들까지 데리고 다니기도 했고, 내가 친정집에 갈 때 언니네 가족들도 함께 가서 놀다 오기도 했다.

친정집에서의 앞집언니 자녀와 아들
닌자거북이 생일 케잌

요리를 잘하던 언니

언니는 미국에서 살 때 정식으로 요리를 배웠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미국 음식을 잘 만들었다. 시아버님이 양식을 잘 드시는 편이었는데 시아버님은 언니가 만든 음식 중 라자냐를 제일 좋아하셨다.
언니가 앞집에 사는 동안 거의 매일 언니가 만든 양식과 우리 집 한식을 나눠 먹으며 살았다.
나는 언니가 만든 음식 중 호박을 넣고 만든 빵을 제일 좋아했었다. 지금도 제과점에 갔다가 호박을 넣은 빵을 보면 언니 생각이 난다.
언니는 내가 식은 김밥을 썰어서 계란물에 씌운 후 프라이팬에 앞뒤로 노릇하게 구워 주었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언니도 가끔 만들어 먹으면서 내 생각을 했다고 한다.
언니는 우리 아들 생일에 닌자거북이 모양의 케이크를 굽고 장식할 크림과 케이크 그림을 갖고 와서 크림 짜는 법을 알려준 적이 있다. 남편과 닌자 거북이 위에 크림으로 색을 맞추어 장식을 했는데 완성된 닌자거북이 케이크를 보고 아들이 엄청 좋아했었다.

한옥펜션 다담 황토방
다담 앞뜰 대나무 숲

한옥민박 안채에서 음악을 들으며 옛이야기를 하면 한참을 웃고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가 잘 황토방으로 건너왔다.

 

황토방 침실은 불을 때어 방바닥이 따뜻했고, 흰색 광목에 풀을 메겨서 꿰맨 이불이 깔려있었다. 깨끗이 바느질되어 있는 요와 이불을 보니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하고 정갈한 이부자리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둘이는 예전에 함께 아이들 데리고 대전 엑스포 전시장에 갔던 이야기도 하고 언니가 부대 축제에 쓸 LA갈비를 잔뜩 재우던 일, 내게 스파게티 소스와 바비큐 소스 만드는 방법 알려주던 이야기를 하면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다담 커피와 토스트

 

다음날 아침 민박 다담에서 준비해준 커피와 토스트를 먹고 앞마당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언니는 동생들에게 한국에 오는 날을 하루 뒤로 알려주었다고 한다. 공항에 짐을 맡겨 두고는 광주로 나를 만나러 먼저 왔던 거여서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일부러 이렇게 나를 먼저 찾아온 언니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20년 만에 만난 언니와 하룻밤을 함께 지낸 후 광주고속버스터미널에 언니를 내려주고 오는 데 너무 아쉬웠다.
다음에 꼭 두 사람 모두 건강해져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때는 언니 가족을 우리가 차에 태워서 함께 여행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힘들던 시절 이웃으로 이사와 친구가 되어 주었고 언니가 되어주었었는데 이렇게 또 건강이 가장 좋지 않을 때 또 찾아와 용기를 주고 갔다. 그렇게 만난 지도 이제 어느새 5년이 되어간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오겠다는 언니를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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