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연락처를 묻는 전화였다.
내가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고 연락처를 모른다고 말하니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너는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랬다. 선생님은 내게는 아주 특별한 분이셨다.
그런데 그런 내가 선생님 연락처를 모르고 살고 있다니... 이런저런 이유를 대더라도 궁색한 변명일 수 밖에는 없다.
초등학교 때 2년간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은 우리가 5학년으로 올라가던 해에 다른 학교로 부임을 가셨다. 선생님이 부임해 가실 때 우리들은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이 싫어 엄청 울었었다.
내게 특별했던 선생님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집에서 학교에 가는 교통이 불편해서 1시간을 걸어서 가거나 아니면 새벽 첫차를 타야만 했었다.
중학교 입학 당시 반 배정 고사에서는 좋은 성적을 받았었는데 월말고사와 중간고사를 보면서 점점 성적이 떨어지자 엄마는 시내에서 과외공부를 받게 했다. 과외공부까지 하면서 막차를 타고 다니던 나는 자꾸 빈혈로 쓰러졌다. 그리고 시험 때만 되면 심장이 방망이질하듯 뛰면서 호흡곤란이 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던 것 같다. 병원을 찾아가기도 했고 한의원에도 찾아갔었다. 의사 선생님은 휴학계를 내고 쉬게 하라고 했다. 다행히 바로 여름방학이 돌아와서 휴학을 하지는 않았고 학교에서 내게 전과목 과제를 면제시켜주었다.
개학을 하자 또다시 몸이 안 좋아져서 엄마와 병원에 다녀오는데 길에서 우연히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애 얼굴이 왜 이리 안 좋으냐고 물으셨다. 이야기를 다들은 선생님은 시내에서 자취를 하고 계시다며 선생님이 나를 건강이 좋아질 때까지 데리고 있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에게 대신 교복과 책가방하고 집에서 갈아입을 옷만 챙겨 보내라고 했다.
선생님 댁에 들어가던 날 선생님은 엄마한테 선생님이 다 알아서 챙길 테니 아무것도 갖고 오지도 말고 찾아도 오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선생님과 나는 3개월을 넘겨 같이 살았다. 선생님이 밥도 지어주고 도시락도 싸주고 매일 "지금은 한창 자랄 때니 잘 먹어야 된다. 잠은 일찍 푹 자야 된다." 하며 다독여 주었다. 선생님을 따라 성당에도 몇 번가 기도 했었다. 막연히 나도 성인이 되면 성당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나에게 이제 많이 건강해졌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선생님과 연락이 끊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선생님은 나를 집으로 보낸 그해에 결혼을 하셔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셨다.
성인이 되어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내가 선생님과 연락이 끊어진 후 처음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기억으로는 아마 1983년도였던 것 같다.
서울 외삼촌댁에 갔다가 무심코 전화번호부 책을 넘겨 보다가 서울 영등포구 화곡동에 사셨던 선생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선생님의 본가 주소를 외우고 있다.
'영등포구 화곡동 0-00번지' 전화번호 책에서 추 씨 성으로 동일한 주소를 찾아 내려갔다. 드디어 주소와 일치하는 추 씨 성의 전화번호가 나왔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통해 남자분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보세요. 추 00 선생님 댁이 맞나요?"하고 물으니 "우리 딸인데 누구요?" 하신다. 선생님 제자라고 말씀을 드리니 반가워하시며 선생님 전화번호를 알려주시며 결혼해서 일산에 살고 계시다고 한다.
선생님께 전화를 걸으니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의 선생님 음성이 들려온다. "선생님 저 000예요." 하고 말하니 선생님 목소리 톤이 올라가며 너무도 반가워하신다.
선생님은 결혼하시고 아이를 나으면서 학교를 그만두시고 살림만 하고 계셨다.
그 당시만 해도 휴대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이었고 우리 집은 전화도 없었다. 어떻게 연락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을 너무도 좋아하던 초등학교 동창들 몇몇에게 연락을 해서 일산에 사시는 담임선생님을 함께 찾아뵈었다.
선생님은 우리들을 가르치던 그 당시의 머리 스타일을 그대로 하고 계셨고 화장끼 없는 얼굴도 그대로였다.
선생님이 준비해주신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왔다.
선생님은 그때 내손을 꼭 잡아 주시며 " 너는 꼭 하나님 믿어야 한다. 성당이든 교회든 꼭 다녀야 한다. 내가 늘 기도할 거다. 내 말 명심해라." 하면서 유독 내게 신신당부를 하셨다.
그 후 선생님께 가끔 안부전화를 하며 지냈었는데 선생님 가정에도 무언가 일이 생기면서 통화 가능한 시간을 정해 주셨는데 그 시간은 내가 전화를 하기 곤란한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전화통화도 뜸해지고 찾아뵙지도 못했다. 몇 년 후 나도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를 하느냐 연락을 자주 못하고 살았었다.
그 후 내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초등학교 동창회 총무를 여러 해 맡아서 했는데 모임에 선생님을 초대하자는 의견이 있어서 연락을 드린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하시는 일도 있고 집안일 신경 쓸게 많으시다며 초등학교 동창 중 가장 예뻐했던 친구가 결혼한다고 하면 그때는 내려오시겠다며 극구 사양을 하셨었다.
담임선생님이 유난히 예뻐했던 아이
항상 긴 생머리를 핀 하나로 질끈 묶고 한여름에도 원피스에 바지를 입었던 선생님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셨는데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못하는 것보다 인성교육을 중시했고 체벌보다는 기도로 아이들을 이끌었던 분이다.
그 당시만 해도 농촌 시골마을이다 보니 겨울이면 누런 코를 흘리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유독 얼굴과 손등이 다 터서 피부가 얼룩덜룩하고 지저분한 남자아이가 있었다. 선생님은 그 아이를 유독 예뻐하며 먹을 것도 챙겨주고 그 아이 코와 손을 닦아주고 손등에 로션을 발라주고는 하셨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선생님이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 아이를 유독 예뻐하는 것을 시샘하는 친구들도 없었다.
우리가 처음 찾아갔을 때도 그 아이 소식을 물으셨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 친구는 상급학교를 가지 못했고 어렵게 살고 있었다. 그 이후로 우리들이 결혼한다고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 때면 000 이는? 하고 묻고 그 아이가 결혼하면 알려달라고만 하셨었다.
학교 뒷동산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던 선생님
선생님은 시골에서 동화책을 많이 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생각해 수업이 끝난 후 학교 뒷동산에 올라가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하셨다.
선생님이 읽어주던 책 중 '알프스의 소녀'가 아직도 기억에 난다. 이모 손에 이끌려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하이디가 두꺼운 옷을 입고 걸으며 더워서 쩔쩔매는 이야기 부분을 읽어줄 때 하이디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선생님을 다시 찾을 방법은?
몇 년 전 대장암 진단을 받고 딸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선생님이 내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아시면 기뻐하실 듯 해 연락처를 찾아보니 휴대폰을 새로 구입하면서 통신사가 바뀌어 나도 모르게 연락처가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그 후 매스컴에서 스승의 날을 맞이하며 은사를 찾아준다는 보도가 나오길래 교육청에 연락을 해보았는데 현직에 있지 않으면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제 선생님이 더 연세가 드시기 전에 다시 찾아뵙고 싶은데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못해 찾을 길이 없다.
선생님은 교대를 갓 졸업하고 경기도 평택 가재동에 있는 송탄초등학교에 1971년도에 부임해 오셔서 2년간 근무하셨다. 지금 연세가 70대 중반이 되어 계실 듯한데 선생님의 이름 석자와 친정이 영등포구 화곡동이었다는 것 80년대에 일산에 있는 아파트에 사셨고, 지금도 성당에 나가고 계실 거라는 것밖에는 선생님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없다.
한 가지 더 있다면 남편분이 1970년대 후반에 송탄효명고등학교에 근무하셨었고 학교에서 화재사고가 나서 화상을 입으셨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에 비하면 연락처 조차 알지 못하는 너무도 한심한 제자의 모습이다.
아직도 초등학교 동창들 중 많은 친구들이 선생님을 보고 싶어 하는데 삶이 바쁜지 나서는 친구는 없다. 아마도 이번에도 내가 선생님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 방법을 알 수가 없어 조언을 구하고자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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