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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그리고 시어머니

김치만두와 친정엄마

by 토끼랑께 2021. 1. 13.

지난가을에 담근 김장김치가 맛있게 익어가니 김치만두 생각이 간절해졌다.
요즈음에는 여러 종류의 만두가 시중에 나와 있어 손쉽게 살 수 있고 맛도 훌륭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 집에서 만들어 먹던 그 만두만의 맛과 그리움이 있다.
엄마는 겨울이면 어김없이 만두를 엄청나게 만들고는 하셨다. 큰 솥에 만두를 쪄서 접시에 수북이 쌓아 놓으면 온 가족이 모여서 한없이 먹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워낙 만두를 좋아하셔서 한자리에서 2,30개는 거뜬히 드셨던 것 같고 그때에 나는 도시락으로 찐만두를 학교에 가져가기도 했었다.

찐만두

친정 엄마는 종갓집 맏며느리였고 평생을 일속에 파묻혀 사셨던 것 같다. 고 모두분이 결혼하기 전에는 엄마일을 도와주고는 했지만 대부분은 엄마손을 거쳐 모든 것이 만들어졌고 고 모두분이 결혼하고 나서 엄마의 보조역할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되었다.
일 년에 여러 번의 제사를 치르고 명절을 쇠려면 엄마는 대용량의 음식을 만들어야만 했다. 특히 겨울에 설날을 앞두고는 며칠 전부터 엄마의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고 그때의 내 생각은 엄마들은 다 저렇게 잠을 자지 않고도 음식을 할 수 있는 줄로만 생각했다.
엄마는 그 추운 겨울에 그것도 늦은 밤에 엿을 만들며 엿기름자루 잡으라고 나를 불러낸다 또 어느 날은 두부 자루 붙잡으라 부르신다 따뜻한 방에 있다 나가면 너무도 춥고 맨손으로 뜨거운 엿기름 자루 두부 자루를 잡고 있으려면 손이 뜨거워 춥다 뜨겁다 불평하는데 엄마는 방에 있던 것이 여태 밖에 있는 나보다 더 춥냐고 화를 내셨다.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며 두부도 만들고 조청도 만들고 엿도 만들고 마지막에는 만두를 만들 때에는 엄마 옆에 앉아서 밀대로 동그랗게 만두피를 밀어내야 했다.
엿을 만들고 식혜를 만들고 두부를 만들고 묵을 쑤고 만두를 만들어 광에 가득 넣어 두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세배인사 오는 집안 어른들과 동네분들 대접을 하셨다.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고 난 요즘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명절 세배 다니던 풍속도 사라지고 많은 손님이 오지를 않으니 가족끼리만 지내게 되었는데도 엄마의 음식량은 크게 줄지를 않았다.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를 하면서 엄마가 잠을 안자고도 일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일을 해야만 하니 잘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엄마도 많이 힘드셨을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나마 심부름하며 어깨너머로 배운 덕분에 시댁에서 식혜 만들고 묵 쑤는 일등 간단한 건 내손으로 해낼 수 있었다.
결혼 후 10년이 지나 직장생활을 하게 된 나는 친정엄마집에 들어가 함께 살게 되었고 결혼 전에 하던 엄마의 보조역할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는 명절음식을 예전처럼 하지는 않지만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하는 것이 김치만두 만들기이다.

만두피 반죽
만두피 만들기


젊어서 너무 일을 많이 해서인지 나이가 드시면서 관절부터 나빠지시더니 여러 가지 질병으로 입원과 수술을 반복하시면서 거동하는 것도 많이 힘들어하시게 되고 말았다.
혼자서도 거뜬히 하시던 일들을 몇 년 전부터는 힘에 겨워도 하고 밖에 자유롭게 다니기 힘드시니 이웃 친구분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신다 이제는 만두를 만드실 때에는 이웃에 사는 당숙모님을 비롯해 이웃 아주머니들을 불러들여 대량의 만두를 하신다. 그날은 하루 종일 모여 웃고 얘기하며 터지는 만두는 즉석에서 드시고 갈 때 한 봉지씩 들고들 가신다. 엄마는 아주머니들과 이야기 꽃 피우니 심심치 않고 맛난 만두 만드니 즐거우신가 보다. 어쩌면 주말에 올 두 동생 가족들까지 먹일 수 있음에 더 좋으셨을 수도…
세월은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고 무심히 흘러만 간다. 2년 전 여름부터는 신장투석까지 하게 된 엄마가 이제는 재작년 가을을 마지막으로 남의 손을 빌리시던 김장도 끝을 내셨고 만두도 당연히 만들 생각도 못하시고 몇 개월 전부터는 전혀 걷지를 못해 스스로 노인병원에 입원하셔서 생활하고 계시다 주 3회 하시던 신장투석도 이제는 주 4회로 바뀌었다.
그토록 많은 일을 하시고 식구들이 잘 먹는 게 좋아 당신은 드시지 않는 음식까지도 그렇게도 열심히 하시더니 이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엄마를 보며 하실 수 있을 때 실컷 하시게 할 것을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

김치만두속
김치만두


엄마가 하셨던 그 방법대로 밀가루를 반죽해서 비닐팩에 넣어 숙성되게 두고 김치를 썰어 자루에 넣어 무거운 것을 올려놓고 두부랑 삶은 숙주를 베 보자기에 싸서 짜고 돼지고기를 밑간하고 당면을 삶아 버무려 만두소를 만든다.
나 혼자 김치만두를 만들며 친정 엄마 생각에 마음이 짠해진다.
저녁에 들어와 맛있게 먹을 남편과 아들을 생각하며 일손을 재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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