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와' 비대면 면회'하던 날 건강하시던 모습을 떠올리며

지난 주말에 동생들과 노인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신 친정엄마와의 '비대면 면회'를 다녀왔다. 면회시간보다 먼저 도착한 우리는 열체크와 방문자 기록을 한 후 면회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침대에 누운 채로 친정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와 맞은편 유리창 너머 면회실로 들어오신다. 남동생이 먼저 친정엄마와 대화를 시작했다. 남동생은 엄마를 보더니 "김진희 여사~ 잘 지내셨어요? 우리 김진희 여사님 여전히 미인이시네~"하고 먼저 말을 건넨다. 엄마는 남동생의 그 말을 알아들으셨는지 빙그레 웃으신다. 요양보호사 아주머니가 마이크를 엄마 손에 쥐어 드리며 "아드님이 어머님 보러 오셨네요. "하니 친정엄마는 "내가 보러 내려왔지 아들이 온겨?" 하며 그 와중에 농담을 하신다. 친정엄마는 전혀 농담을 할 것 같지 않은 분인데 순간 재치 있는 농담을 한 번씩 해서 주위 사람들이 웃게 만들고는 했었다. 남동생이 "엄마 아침 뭐 드셨어요?" 하고 여쭤보니 이내 딴청을 피면서 "밥"하고 대답한다. 요양보호사가 "죽 드셨잖아요."라고 말을 하니 다시 "죽"하신다.

친정엄마가 좋아하시는 완두콩

돌아가며 마이크를 통해 친정엄마와 인사를 하고 몇 마디씩 대화를 나누는데 친정엄마는 손에 힘이 없어 마이크를 똑바로 들지도 못하신다.
2주 전에 와서 '접촉 면회'를 했을 때 얼굴이 붓고, 특히 신장투석을 하는 팔의 경우 손 전체가 풍선을 불어놓은 듯 부어있던 모습을 보았는데 얼굴과 손에 부기는 거의 빠져있었다. 그런데 눈의 초점이 흐리고 정신은 더 나빠지신 듯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해서 등받이를 올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정상적인 대화가 거의 어려웠다.
양쪽 소매 안쪽으로 팔에 붕대를 감아놓은 것이 보여 왜 손목에 붕대를 감았느냐고 질문을 하니 로션을 자주 발라주고 해도 너무 긁어 상처가 나서 붕대로 감아놓았다고 한다. 요양보호사가 우리와 하는 이야기를 듣더니 가렵다는 생각이 나시는지 다시 긁으려고 하신다.
면회시간이 조금 경과하자 자꾸 하품을 하시더니 힘이 드는지 눈을 감아 버리신다. 더 이상 면회를 할 수가 없어 요양보호사에게 친정엄마를 그만 모시고 올라가라고 했다.
친정엄마가 타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동생들과 올케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지난달에 '비대면 면회'를 할 때에는 내가 암 요양병원에 내려가 있어서 뵙지 못했는데 동생들은 그때 보고 한 달 만에 뵙는 친정엄마의 상태가 더 나빠졌다며 속상해했다.

동네 산책길에 네잎크로바

친정엄마가 건강하시던 때의 모습

우리는 친정엄마의 건강하시던 때를 떠올리며 어쩌다 이렇게 까지 되셨는지 지금의 모습이 더욱 안타깝기만 했다.
친정엄마는 어려운 사람에게는 후하게 대하는 분이셨고, 경우가 밝아 누구에게도 책 잡힐 일은 거의 하지 않는 분이었다.
그리고 옳지 않은 일은 바로 잡아야 하고 남의 것을 거져먹으려 하지도 않는 분이었다. 그리고 부당한 일을 그대로 참고 넘어가지도 않았던 분이었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부리지 않는 분

어릴 적 친정엄마가 장날 시내에 다녀오셔서 장본 물건을 정리하더니 옷이 하나 더왔다고 하셨다. 두 가지를 갖고 비교하다가 하나를 구입했는데 집에 와보니 옷가게에서 실수로 두 가지 옷을 다 담아줬던 것이다. 친정엄마는 다음 장날 그 옷을 갖고 나가 옷가게에 돌려주었고 그 일로 옷가게 사장님과 평생 친구가 되었다. 친정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우리들도 계산을 잘못해 돈이 더 오거나 하는 경우는 반드시 돌려주는 바른생활을 하며 살았다.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분들에게 인정을 베푸시던 분

동네에 생선을 머리에 이고 며칠에 한 번씩 팔러 오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생선파는 아주머니는 동네를 한 바퀴 돌며 팔다가 남는 생선이 있으면 우리 집에 들렀는데 엄마는 항상 남은 생선을 다 놓고 가라고 하고 밥까지 차려주고는 하셨다. 생선파는 아주머니는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혼자 어렵게 아들을 공부를 시키며 사시는 분이었다. 친정엄마가 밥을 차려주면 맛있게 드시고는 우물에서 생선을 다 손질해서 부엌에 들여놓고 가셨다. 세월이 흘러 생선파는 아주머니는 아들이 대학 졸업하고 좋은 곳에 취직했다며 자랑을 하셨는데 친정엄마는 내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친정엄마의 중매로 결혼한 사촌 이모

친정엄마는 옆집 아주머니와 나이가 동갑이어서 친구처럼 지냈다. 옆집 아주머니는 항상 단정하고 성격도 좋으셨는데 어느 날 남동생 이야기를 하면서 색시감 소개를 부탁하셨다고 한다. 친정엄마는 평소에 옆집 아주머니를 볼 때 그 동생이면 괜찮을 듯해서 사촌 여동생과 맞선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맞선 보는 날 친정엄마도 그 자리에 나갔는데 옆집 아주머니 동생분이 누나와 너무 이미지가 다르고, 작은 체구에 인상도 좋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으셨다고 한다, 친정엄마는 사촌동생과 숙모에게 없던 일로 하자고 하고, 옆집 아주머니에게도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친정엄마 숙모님이랑 사촌동생은 마음에 든다고 했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몇 년 후 친정엄마의 사촌동생은 남편에게 두들겨 맞다가 매에 못 이겨, 친정이 아닌 우리 집으로 도망을 왔다고 한다. 울면서 달려온 여동생의 모습을 보고 친정엄마는 기가 막혀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옆집 아주머니 남동생이 택시를 타고 쫓아왔다고 한다. 친정엄마는 이모부를 보는 순간 " 너는 매 맞아도 안 아픈가 어디 나한테 맞아봐라"하고 소리치며 두 주먹으로 가슴을 때리고는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바닥으로 내동댕이를 쳤다고 한다. 바닥은 시멘트 바닥이었는데 친정엄마가 초인적 힘을 발휘했는지,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이모부가 순간 숨도 못 쉬고 꼼짝을 안 했다고 한다. 친정아버지는 이모부가 죽었는 줄 알고 너무 놀라서 달려가 일으키니 숨을 쉬고 있어 안도했다고 한다. 정신을 차린 이모부는 기다시피 누나인 옆집 아주머니 댁으로 도망을 갔다고 한다.
친정엄마는 옆집에 쫓아 가 이모부를 잡아다가 무릎을 꿇게 하고 야단을 쳤다고 한다. 당신이 소개를 해서 결혼까지 한 여동생이 남편에게 매를 맞고 사는 걸 알고는 너무 속상해했고, 당장 이혼하라고 난리를 쳤지만 이모는 그대로 그 결혼생활을 유지했다.
친정아버지는 가끔 그때 이야기를 하며 "나는 우리 마누라가 너무 무서워~"하며 친정엄마를 놀리기도 했었다.

술주정하는 손님에게 물벼락을 내렸던 분

내가 결혼 후 친정엄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친정엄마는 마을 부녀회 공판장을 2년간 맡아서 운영을 하신 적이 있었다. 시골이여 슈퍼나 음식점이 없다 보니 우리 마을과 이웃마을분들이 이용을 하고는 했는데, 하루는 이웃마을 아저씨가 와서 술을 마시고는 술주정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고 한다. 친정엄마가 조용히 이제 가시라고 타일렀는데 그 아저씨는 점점 도를 넘게 술주정을 했다고 한다. 결국 친정엄마는 설거지하던 물을 술주정하는 아저씨한테 쏟아부었고, 설거지 물을 뒤집어쓰고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술주정하던 아저씨는 줄행랑을 쳐서 도망을 갔다고 한다.

씀바귀꽃

마을 일에도 명쾌한 해결사 역할을 하던 분

우리가 살던 마을 중 10여 가구의 땅주인이 타 지역 사람이었는데, 일 년에 한 번 세를 내면서 몇 대를 내려오며 살고 있었다. 땅주인은 땅을 팔려고 하지를 않은 채 몇 대를 내려왔던 거였는데, 20년 전쯤 땅주인 자손이 땅을 마을 사람들에게 팔겠다고 했다. 마을 남자 어른들이 여러 번 땅주인을 만났는데 서로의 적정선이 맞지를 않아 타협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친정엄마가 남자분들과 함께 땅주인을 찾아가게 되었고 적정선에 타협을 보게 되어 우리도 20년 전에 그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

벼룩나물 꽃

친정엄마가 가장 무서워하던 것

친정엄마는 외할머니가 치매로 여러 해를 정신을 놓고 지내시는 것을 보며 나중에 "나도 늙어 치매가 오면 어떻게 하냐"하시며 걱정을 했었다. 민간요법으로 전해지는 치매예방법을 듣고는 그대로 따라서 드시는 것도 여러 번 봤었다.
내가 잘못된 일 안하고 바르게 살면 세상 무서울 것 없다는 친정엄마도 치매만큼은 절대로 걸리지 않기를 바라셨는데 이렇게 오랜 질병 끝에 결국 치매까지 온 친정엄마를 보며 우리 모두의 마음이 먹먹하기만 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