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강원도 철원 큰댁을 다녀오면서 푸근한 정을 듬뿍 앉고 왔다.

by 토끼랑께 2021. 5. 25.

강원도 철원에는 남편 6촌 형님이 살고 계시다. 시아버님과 큰 아버님은 4촌이신데 고향이 함경북도셨다. 두 분은 6.25 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북한에서 함께 남쪽으로 피난을 오셨다고 한다. 두 분은 몇 년간 함께 지내셨는데 큰 아버님이 결혼하시면서 이곳 철원에 정착해서 사시게 되었고, 시아버님은 평택 송탄에서 정착을 하여 살게 되셨다고 한다. 시아버님이 69세 되시던 해에 시부모님은 큰 아버님이 살고 계신 철원으로 이사를 해서 같은 마을에서 5년간 사신적이 있었다. 그때 시부모님을 뵈러 자주 다니면서 큰댁 가족들과 더 친밀해졌다. 남편과 시아주버님은 촌수로는 6촌이지만 친가 쪽으로 다른 친척이 없고, 두 사람 모두 맏아들이어서 통하는 것이 있는지 나이가 들수록 더 정을 나누며 지내고 있다.
이번에 철원에 있는 복주산 자연휴양림에 2박을 하게 되었는데, 근처에 간 길에 아주버님 댁에 들려 식사대접을 하기로 했다. 전날 형님과 전화통화를 하니 다음날 파프리카 심는 작업이 3시가 넘어 끝난다고 한다. 우리는 4시까지 가겠다고 말씀을 드리며 음식점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약속을 했다.

철원들판

철원 시내에서 와수리 방향으로 가면 토성리라는 마을이 큰댁이 사는 곳이다. 철원은 우리나라 3 대평야 중 하나로 논농사가 많다. 큰댁은 쌀농사를 했었는데 전에 방문하면 아주버님은 철원 오대쌀 밥맛이 좋다며 쌀 한 자루를 차에 실어주고는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쌀농사를 하지 않고 파프리카 농장을 하고 계시다. 2년 전부터 아주버님 건강이 나빠지면서 작은 조카가 귀농을 해서 파프리카 농사를 하고 있다. 큰댁 가는 길에 비닐하우스가 여러 군데 보인다. 작년 6월에 백종원의 '맛남의 광장'에 철원 파프리카 편이 방송되었던걸 보니 이곳 철원에 파프리카 농장이 많은 듯하다.

큰댁 파프리카 농장에 도착하니 비닐하우스에서 형님이 나오며 반겨 주셨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화목난로가 놓여 있었는데 파프리카 농사를 위해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인 듯하다. 큰댁 파프리카 농장에는 외국인 근로자가 4명이 일을 하고 있는데, 요즘 농촌에서 일을 하려면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최근 코로나 19로 본국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이 많아 인건비가 더 올라서 힘들다는 이야기도 하신다.

파프리카 농장
파프리카
파프리카
파프리카

아주버님이 외출했다가 들어오시더니 파프리카 농장 구경을 시켜주셨다. 몇 년 전 가을에 방문했을 때는 한창 파프리카를 수확하는 시기여서 파프리카가 천정높이 까지 자란 모습을 보았는데 지금은 이제 모종을 옮겨 심어서 아직 키가 작았다. 옮겨 심지 않은 모종에 파란 파프리카가 달려있다.

빨간색 파프리카

몇 년 전 파프리카 수확시기에 갔을 때 가락시장으로 내보내려고 담아놓은 파프리카 중 상품으로만 4 상자를 차에 실어주셨다. 농사일이 쉽지 않은 것을 알기에 한 상자만 갖고 가겠다고 하는데 이웃과 나눠먹으라며 차에 실어주신다. 큰댁 덕분에 싱싱한 파프리카를 이웃과 나눠먹었고, 남은 파프리카를 김치통에 키친타월을 깔고 차곡차곡 담아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며 한동안 잘 먹었다. 파프리카를 샐러드로 먹기도 하고 꿀을 넣고 주스로도 먹었다. 양이 많아 일부는 채를 쳐서 건조기에 말렸다가 잡채에 넣어 먹기도 했다.

파프리카 나물

작년에는 코로나로 인해 아무 곳도 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었는데, 큰댁 조카를 만나기 위해 갔던 아들 편에 파프리카 나물을 듬뿍 보내주기도 했다.

돈대감숯불화로구이
돈대감숯불화로구이메뉴

아주버님과 형님하고 철원 문혜리에 있는 돈대감 숯불화로구이에 도착했다. 출입구에 가격표와 나란히 군장병 우대업소(30% 환급)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철원에 군부대가 많이 있으니 이런 혜택도 있는 듯하다.

손 소독 후 발열체크를 하고 방문자 기록을 했다. 이른 저녁시간에 갔더니 홀에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남편이 등심을 주문하자 형님은 돼지갈비도 맛있다며 그냥 돼지고기 시키라고 성화를 하신다. 남편은 등심 먹고 돼지고기도 시킬 테니 어서 드시라고 한다.
불판이 나오는데 가장 가리에 계란찜과 치즈, 그리고 김치와 버섯을 담아낸다. 형님이 이 집 단골인지 사장님이 알아보시고 치즈 좋아하시니 다 드시면 더 드릴 테니 많이 드시라고 한다.

고기를 주문했는데 밑반찬 가짓수가 많이 나온다. 형님은 이곳이 철원에서 유명한 맛집이라며 반찬도 많이 나와 좋아한다고 하신다.

평소에 고기를 멀리하는 나도 눈앞에 구워지는 등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한점 먹어보니 등심은 너무 연하고 맛이 있었다. 아주버님 남편 그리고 나는 열심히 먹는데, 형님은 완전히 익어야 드신다고 기다리고 계신다. 형님 앞으로 바짝 익힌 고기를 놓아드리고 돼지 목살과 돼지갈비를 추가로 주문했다. 아주버님은 쇠고기를 잘 드시는데 형님은 역시 돼지고기를 더 잘 드신다.

옥수수와 치즈를 먹는 재미도 있다.

고기를 너무 많이 시켜서 결국 다 먹지를 못하고 남기게 되었다. 남은 고기를 숯불에 구워 포장해서 형님을 드렸다. 남편이 음식값을 계산을 했는데 아주버님이 올 때마다 돈을 쓴다며, 파프리카도 이제 심어 줄 것도 없는데 어떡하냐고 끌탕을 하신다. 집에 다시 가서 산나물이라도 갖고 가라고 해서 사양하고 우리는 숙소인 복주산휴양림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오전에 복주산 휴양림 산책을 하고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형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주버님이 내내 우리 돈 많이 썼다며 나물이라도 보내라고 하신다는 거다. 결국 아주버님 마음 편하게 해 드리려고 오는 길에 큰댁에 다 시들려 형님이 챙겨주는 산나물과 유정란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산나물
고사리
고비
취나물과 고사리
유정란

형님이 산으로 다니며 나물을 하나하나 뜯느냐 수고했을 것을 생각하면 갖고 오기가 미안하지만, 그래야 두 분 마음이 좋다니 어쩔 수 없이 주는 대로 받아오면서도 미안하고도 고마웠다. 시아버님과 큰 아버님은 10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이렇게 언제든 찾아가면 따뜻하게 대해주는 큰댁이 있어서 너무 마음이 따뜻하다. 두 분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며 두 분의 정을 듬뿍 앉고 돌아왔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