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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투병기

대한 암환우권익협회 주체 암수기 공모 최우수상 수상

by 토끼랑께 2025. 7. 12.

지난 4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한 암환우권익협회에서 암환우들 수기공모전이 있는데 참가해보라는 권유였다.
며칠을 미루다가 오랫 만에 글을 썼고
감사하게도 최우수상을 수상하게되었다.
아래글은 수기공모전에 제출했던 글이다.


'나의 암 치료기 '

 
올해는 내가 결혼한 지 40년이 되는 해다. 얼마 전, 남편과 함께 결혼 40주년을 기념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10년 전, 결혼 30주년이 되던 해에는 병원에 입원해 항암치료를 받느라 기념일을 제대로 챙길 수 없었다. 그때 남편과 병실에서 “꼭 완쾌해서 10년 후에는 함께 해외여행을 가자”고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올해 결혼 40주년 기념으로 일본 삿포로에 3박 4일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10년 전을 떠올려보니, 그때의 암 진단과 치료 과정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오히려 감사한 일들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다.

우리 집에는 암 가족력이 전혀 없었기에, 그때의 암 진단은 정말 낯설고 두려웠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가족들의 지극한 정성과 사랑, 주변 지인들의 따뜻한 관심, 그리고 좋은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건강을 되찾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암 진단을 받은 날은 2014년 10월 21일이다. 구불결장(C18.7) 암 진단을 받고, 같은 해 11월 6일 복강경하 전방 절제술을 받았다. 이후 항암치료를 받았고, 2016년 1월 8일에는 양쪽 폐에 생긴 8개의 종양을 흉강경으로 쐐기절제술을 받았다. 그런데 같은 해 11월 22일, 또다시 양쪽 폐에 8개의 종양이 재발해 같은 방법으로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두 번째 폐 수술은 첫 번째 수술 후 12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3개월 만에 재발한 것이었다. 담당 교수님께서 “이렇게 빨리 종양이 자란 것은 항암치료가 효과가 없었던 것”이라며, 이후로는 항암치료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수술 후 3개월마다 혈액검사와 CT검사로 추적관리를 했다.

그리고 암 진단을 받은 지 꼭 10년이 지난 2024년 10월, 담당 의사 선생님께서 “이제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은 건강하게 일상생활을 하며, 가족과 함께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모든 시간을 지나오며, 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앞으로도 이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고 싶다.
 

암진단을 받던 과정

처음 암 진단을 받았던 해 3월 즈음, 내 몸에는 여러 가지 이상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암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기에, 모든 증상을 내 나름대로 합리화하며 넘겼다.

평소에도 소화가 잘 안 되고 자주 체했으며, 변비와 설사가 번갈아 나타났다. 만성피로가 심해 근무 중에도 졸음이 쏟아졌고, 아침에 일어나려면 온몸이 쑤시고 오한이 들어 그냥 계속 잠만 자고 싶었던 날들이 많았다.

겨울 동안 늘어난 체중 때문에 봄이 되자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체중이 쉽게 빠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체중이 줄었음에도 아랫배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회사 정기검진에서 혈변이 있다는 소견이 나와 대장 재검을 권유받았지만, 별일 아니겠거니 하며 5개월 넘게 검사를 미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회사에서 심하게 혈변을 본 후에야 그동안의 증상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내 증상들이 대장암과 거의 일치했다.

그제야 가까운 병원에 가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검사가 끝난 뒤, 의사 선생님께서 최대한 빨리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주말 동안 집에서 어떤 병원을 가야 할지, 정말 암이 맞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지만, 가족들에게는 성급하게 얘기해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월요일, 회사에 출근해 6개월 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던 후배에게 주말에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후배는 본인이 치료받았던 병원에 사촌동생이 근무하고 있다며, 직접 전화로 진료 예약을 해주었다.

다음 날, 회사에는 건강검진 재검을 받으러 간다고 휴가를 내고 혼자서 의사 소견서를 들고 원자력병원을 찾았다.

대장내시경 검진 CD를 제출하고 소화기내과 진료실 앞에서 기다렸다.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은 모두 각기 다른 모습이었다. 어떤 이는 마른 체구에 노랗다 못해 연둣빛이 도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얼굴에 흑빛이 돌았다. 그 모습을 보며 ‘저게 내 모습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름이 불려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은 모니터로 자료를 확인하시더니 혼자 왔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이미 의사 소견서를 보고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직접 말씀하셔도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씩씩하셔서 좋습니다. 나가시면 직원들이 도와줄 겁니다.”라고만 말씀하셨고, 암이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으셨다.

진료실을 나와 대기하고 있는데 다시 이름이 불렸다. 외과로 진료과가 바뀌고 담당 의사도 변경되었다. 서명하라는 종이를 보니 산정특례대상자 신청서였고, 암 항목에 체크가 되어 있었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정말 암이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처럼 휘청거리거나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슬프지도, 억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고, 정신이 더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날 받아야 할 검사와 앞으로 며칠에 걸쳐 진행될 검사 일정, 외과 담당의 진료 예약까지 모두 안내받았다. 자리에 앉아 안내문을 보고 있는데, 건강보험공단으로 부터 산정특례대상자 안내 문자가 휴대폰으로 도착했다. 그 순간, 내가 정말 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날 바로 2,3가지 검사를 했던 것 같은데 다른 기억은 없고 전날 저녁부터 먹은 게 없어서  당일 오후 대장내시경검사를 한것은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전날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인지 기운이 없고 계속 잠이 쏟아졌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검사가 끝난 뒤에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아 한동안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이제 이 사실을 어떻게 가족과 회사에 전해야 할지 막막했다. 회사에는 병가를 내고 당분간 출근이 어렵다고 연락했다. 다음 날에도 검사가 예정되어 있어, 남편에게도 알릴 수밖에 없었다.

남편에게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오늘 건강검진 재검 받으러 왔는데, 대장암 초기라고 해. 초기라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대. 집에 가서 자세히 얘기해 줄게.”라고 짧게 말하고, 남편의 반응을 들을 용기가 없어 바로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두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이미 사회에 나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할 텐데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에게는 주말에 집에 오라고 해서 직접 얼굴을 보고 차분하게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무거운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앞으로의 검사 일정을 설명했다. 남편은 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나중에 아이들로부터 “아빠가 엄마 걱정에 펑펑 우셨어”라는 말을 듣고서야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며칠간의 모든 검진을 마치고, 드디어 외과 담당 선생님과의 첫 진료를 받으러 갔다. 남편과 함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나는 평소처럼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의사 선생님은 나의 웃는 얼굴과 옆에 있는 남편의 굳은 표정을 번갈아 바라보시더니, 다시 모니터를 확인하셨다. “선생님, 접니다.” 하고 얼른 진료 의자에 앉으니, 선생님도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선생님은 장기가 그려진 도면을 펼쳐 놓고, 암의 병기(기수)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정확한 병기는 수술을 해서 조직 검사를 해봐야 확실히 알 수 있다고 하셨다.

이어 수술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복강경으로 수술을 진행할 계획이지만, 상황에 따라 개복 수술로 전환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수술 일정을 정하고, 안내문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진료실을 나서면서 마음 한편이 무거웠지만, 남편과 함께라서 든든했다. 이제 본격적인 치료를 앞두고 한 걸음을 내디딘 셈이었다..

 

첫 수술


수술 하루 전, 남편과 함께 아침 일찍 병원에 입원했다. 하루 종일 수술 전 검사를 받고 나니, 딸이 퇴근 후 병원으로 찾아왔다. 남편은 다음 날 다시 오겠다며 집으로 돌아갔다.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의식이 돌아와 병실로 올라왔을 때, 수술 전에 간호사가 “의식이 돌아오면 꼭 심호흡을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했던 말이 떠올라, 정신을 차리자마자 열심히 심호흡을 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이렇게 심호흡을 잘하는 환자는 처음 본다고 칭찬해 주셨다.

나는 평소 긍정적이고 원칙을 잘 지키는 성격이라 병원에서 안내한 지시사항을 철저히 따랐다. 심호흡은 물론이고, 걷기 운동도 빠짐없이 했다. 수술 당일에는 통증도 있고 잠도 쏟아졌지만, 하루가 지날수록 몸 상태가 점점 좋아졌다.

수술 결과도 다행히 좋았다. 종양이 한 곳에 몰려 있어 넓게 퍼지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절제하지 않아도 됐다고 했다. 다만, 아쉽게도 림프절 하나에 암세포가 살짝 침범해 대장암 3기 초로 진단받았다. 앞으로 항암주사 치료를 12회 받아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퇴원하는 날, 의사 선생님께서 “한 달 동안 몸조리 잘하고 체력 키워서 오세요”라고 당부하셨다.

수술 후, 10년 간격으로 두 번의 유방암을 진단받았던 친구가 일부러 전주에서 찾아왔다. 친구는 자신이 두 번째 암을 앓을 때 큰 힘이 됐던 책이라며, 전 서울대병원장이었던 한만청 박사가 쓴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돼라』를 선물해 주었다. 나는 그 책을 먼저 읽고, 가족들도 차례로 읽게 했다. 그 책 덕분에 치료를 받는 동안 나와 가족 모두가 흔들리지 않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집으로 퇴원한 뒤에는 가족들이 주말마다 집에 내려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가족회의를 열어 서로의 역할을 분담했다. 남편은 병원 입퇴원 당일에 동행하고, 내가 집에 있을 때는 곁에서 돌봐주기로 했다. 딸은 직장이 서울이라 병원에 입원하면 퇴근 후 병실에 와서 간호를 맡기로 했고, 아들은 목감에서 직장에 다녔는데, 집에 머물며 출퇴근을 하면서 집안일을 돕기로 했다.

퇴원 후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잘못된 식습관을 버리고, 세 끼 모두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주변에서 내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보양식을 챙겨주기도 해서,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할 때는 오히려 수술 전보다 체중이 늘어 있었다.
 
 

항암치료


내게 항암치료는 정말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다.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던 첫날, 다시 대장내시경과 CT검사를 받았는데 오른쪽 폐 하단에 종양이 새로 발견됐다. 전신 CT로 다른 부위 전이 여부를 확인했지만, 다행히 추가로 발견된 종양은 없었다.

12차례 항암치료 중 첫 번째 치료 후에는 폐에 있던 종양 크기가 조금 줄었지만,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줄지도, 커지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항암주사 치료 첫날, 약이 몸에 들어가고 한두 시간이 지나자 차멀미처럼 속이 메스꺼워지기 시작했고, 다음 날에는 구토까지 이어졌다. 병원에서 나오는 음식은 쳐다만 봐도 속이 울렁거려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심지어 생수에서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물조차 넘기기 힘들었다.

퇴원 후 집에 돌아와서도 음식 냄새가 너무 역겨워 누룽지 한 숟갈만 먹어도 바로 양치를 해야 할 정도였다. 2~3일 동안 거의 누워만 있었고, 암 진단을 받고 처음으로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도 항암치료를 받는 내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고, 퇴원 후에도 일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구토를 참고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을 먹지 못하다 보니 변비가 심해져, 매번 항암치료를 마치고 퇴원할 때마다 관장까지 해야 했다.

CT검사를 반복하다 보니 조영제 부작용도 생겼다. CT 촬영 후 구토하다가 기절한 적도 있었다.

12번의 힘겨운 항암치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내가 살고 있던 평택에 메르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쇠약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남편과 상의 끝에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하기로 했다.

지인의 소개로 전남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숲이 있는 마을에 민박을 월세로 얻어 내려갔다.

암 진단을 받은 후 건강식품을 따로 챙겨 먹지는 않았지만, 병원에서 알려주는 주의사항을 잘 지키고 제철 음식과 신선한 재료로 만든 건강식을 먹었다.

아침 식사 후에는 도시락과 돗자리를 챙겨 편백숲에 들어가 평상에 누워 산림욕을 했고, 하루에 세 번 1회에 40분씩 산책을 했다.

그렇게 3개월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직장을 그만뒀기에,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할 마음의 준비도 했다.
 

암의 재발과 두 번째 도전


3개월마다 추적검사를 받다가 6개월째 되는 날, 양쪽 폐에 종양이 8개나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담당의사 선생님은 양쪽 폐를 모두 수술해야 하고, 이후에 다시 12회의 항암치료도 필요하다고 설명하셨다.

나는 수술도 열심히 받고,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도 했고, 음식도 가려 먹고,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종양이 자라서 또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음식만 잘 챙기고 운동 열심히 하고 스트레스받지 않으면 폐에 있던 종양도 언젠가 사라질 거라고 막연히 믿고 있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종양은 자라고 있었고,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말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더군다나, 수술 후에 다시 항암치료까지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내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평소 이성적으로 모든 일을 받아들이던 나였지만, 그날만큼은 이성을 잃고 한참을 울었다. 암이라는 병은 내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대라는 사실에 마음이 무너졌다.

며칠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에는 나 자신뿐 아니라, 그동안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힘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방법을 바꿔보자고 마음먹었다.

예전에 축령산 편백나무 숲에서 요양할 때, 다른 암 환우들에게 암요양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집과 병원 사이에 있는 암요양병원을 검색해 리스트를 만들고, 주소별로 정리해서 차례로 전화를 걸어 상담 예약을 했다. 남편과 함께 예약한 요양병원들을 직접 방문해 시설과 치료 방법을 안내받고, 음식도 먹어보고, 병원 주변 자연환경도 둘러보았다. 여러 곳을 다녀본 뒤 남편과 상의해 한 곳을 선택했고, 1회 차 항암치료를 마치자마자 바로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 모습이 예전과 달라진 것을 딸도 느꼈던지, 교회에 다녀보라고 권유했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딸은 내가 폐수술을 위해 입원한 날부터 퇴원하는 날까지 딸의 지인들을 동원해 매일 병문안을 오게 했고, 와서 함께 기도도 해주었다. 딸과 그 지인들의 정성에 마음이 움직여, 결국 교회에 나가보기로 했다.

폐수술은 흉강경을 이용한 쐐기절제술로 진행됐다. 대장수술과 달리 폐수술은 수술 당일 회복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양쪽 폐를 모두 수술했기에 양쪽에 배액관을 달고 있어야 했다. 통증도 심했고, 무통주사 부작용이 있어 진통제를 일찍 제거해야 해서 그만큼 더 아팠다. 퇴원 후에도 며칠 동안은 누워서 잠을 잘 수 없어 앉아서 밤을 지새운 날도 많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항암치료였다. 1회 차 항암치료 때부터 구토가 심해지더니, 결국 실신까지 하게 됐다. 처음에는 구토 때문에 화장실에 가다가 쓰러졌고, 그 이후로는 위험하다고 해서 구토가 나오면 침대에서 내려오지 말고  검은 비닐봉지에 토하라며 주사기 지지대에 매달아 두었지만, 침대에서 구토하다가 또 기절했고, 심지어 발작까지 일어났다.

의사 선생님은 항암제 부작용을 의심해 항암제 투여를 중단하고 퇴원조치를 했다.  2주 간격으로 하던 항암치료를 한 달을 쉬었다가  부작용이 의심되는 약을 제외하고 다시 항암제를 투여했다. 그랬더니 구토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3회 차 항암치료 시에 제외했던 약이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이라며, 천천히 주사액을 투여해 다시 한번 시도해 보자고 권유했다. 하지만 결국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다가 구토감이 밀려와 또 기절했고, 변기에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이 의심되어 뇌 CT까지 찍어야 했다.

결국 3회 차 항암치료를 마친 후, 한 달간 휴식기를 갖고 항암치료를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 달의 휴식기를 가진 후 부작용을 일으키는 항암제를 제외하고 항암치료를 계속하기로 결정하였고 남은 9회 차의 항암치료를 했다.
부작용을 일이킨다는 항암제를 제외해서인지 그 후로는 오심이 있기는 해도 구토를 하지 않아서 시간이 갈수록 음식을 먹기가 수월했고 12회 차 항암치료를 마친 후 체중변화도 거의 없었다.
 

암요양병원에서의 치료와 생활


두 번째 항암치료를 시작하면서 암요양병원에 입원해 통원치료를 받았다. 집에서 항암치료를 받을 때보다 여러모로 훨씬 나았다. 항암치료 후 당일에는 여전히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영양수액을 맞으니 기력이 덜 떨어졌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기도 더 빨라졌다.

암요양병원에서는 고주파 치료를 비롯해 비타민제와 다양한 수액 치료를 권유받았고, 실제로 여러 치료를 병행했다. 식사도 여러 가지 중에서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12회의 항암치료를 마칠 무렵, 자연환경이 좋은 전남 담양의 암요양병원으로 옮겼다. 다른 암 환우의 소개로 가게 된 곳이었는데, 처음 머물던 암요양병원보다 주변 환경이 훨씬 좋았고, 음식도 뷔페식으로 다양하게 제공되어 마음에 들었다. 치료 프로그램도 다양했고, 요가 교실, 노래 교실, 예배실 등 여러 활동이 마련되어 있어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았다.

3개월 동안 요양병원에서 권하는 모든 치료를 빠짐없이 받으며 지냈다.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두 번의 수술과 반복된 항암치료로 이미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빨리 회복하고 싶다는 마음에 무리하게 운동과 치료를 병행했던 것이 오히려 부담이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체하고, 계단을 오를 때는 다리를 손으로 들어 옮겨야 할 정도로 힘이 들었고, 나중에는 어지러워 쓰러지기도 했다.

3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 정기검진을 받기 위해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정기검사 결과, 양쪽 폐에 다시 종양이 발견되어 또 수술을 해야만 했다. 담당 교수님은 12번의 항암치료를 하고도 3개월 만에 종양이 자란 것은 항암치료가 효과가 없었던 것이라며, 수술 후에는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3개월마다 정기검사로 경과를 지켜보다가 종양이 자라면 다시 수술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처음 수술과 항암치료를 마쳤을 때는 ‘음식을 잘 먹고, 걷기 운동을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고, 암요양병원에서 권유하는 치료도 빠짐없이 다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나치게 무리한 운동과 과도한 치료가 오히려 내 체력에 부담이 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암요양병원은 전문 의료진의 관리와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 그리고 좋은 식사와 환경 덕분에 암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몸 상태에 맞는 적절한 치료와 휴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방치료와 식이요법 그리고 체질식


세 번째 수술을 마친 뒤, 양방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치료가 없고 종양이 생기면 수술만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한방치료를 시작하게 됐다.

사실 처음 대장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을 때, 딸아이 직장 동료가 한방병원을 소개해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양방치료를 진행 중이었고, 담당 의사 선생님에 대한 신뢰도 깊었기에 한방치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양방병원에서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끼게 되자, 마지막 희망이라는 마음으로 한방병원을 찾았다. 진료를 받고 한약을 처방받았고, 한방병원에서 알려주는 식이요법도 시작했다.

먹지 말아야 할 음식, 지켜야 할 수면시간과 산책시간 등 여러 수칙이 있었고, 약의 종류도 많아 먹는 시간마다 알람을 맞춰가며 복용해야 했다. 당시에는 체력이 너무 떨어져 밥을 씹어 먹을 힘조차 없었다. 식이요법을 해야 하니 암요양병원에 다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 없이 가사도우미를 채용해야 했다. 한방치료를 받는 1년 4개월 동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한약값과 가사도우미 비용까지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컸다.

하지만 한방치료는 효과가 있었다. 한 달쯤 지나자 몸에 기운이 조금씩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고, 나도 다시 살아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두 달이 지나고, 수술 후 3개월 만에 병원 정기검진을 받았을 때 종양이 보이지 않고 혈액검사 결과도 좋았다.

1년쯤 지나 8 체질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함께 암요양병원에 입원했던 환우로부터 8 체질식을 제공하는 암요양병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과 상의해 전남에 있는 그 암요양병원을 찾아갔다.

8체질 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원장님이 문진과 침전을 해보시더니 내 체질이 금양체질이라고 했다. 금양체질의 특징이 “무슨 약을 써도 효과보다는 해가 많다”는 것이었고, 그동안 항암치료와 각종 주사, 약물 부작용이 많았던 이유도 이해가 됐다. 내가 금해야 할 음식도 한방병원에서 금지했던 음식과 많이 겹쳤다.

이후 3개월 동안 8 체질에 맞춰 식사를 제공하는 암요양병원에 입원해 고주파 온열치료와 통증치료, 음악치료, 자세교정, 운동치료만 받았다. 일반 주사약이나 양약 치료는 하지 않았다. 퇴원 후 집에 돌아와서도 한방치료와 함께 식이요법, 그리고 8 체질식까지 2년 가까이 거의 100% 지켜나갔다. 운동도 무리하지 않게 하고, 생활습관을 바르게 하려고 노력했다.

한방치료와 식이요법을 시작한 뒤에도 처음 수술받았던 병원에서 정기진료는 꾸준히 받았다. 3개월마다 하던 정기검사는 마지막 수술 후 5년이 지나자 6개월에 한 번으로 바뀌었고, 작년 10월에는 암 진단을 받은 지 10년 만에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예전처럼 식이요법을 100% 지키지는 못하지만, 나쁜 음식은 최대한 피하고 제철 음식, 건강한 음식을 먹으려 노력한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나며, 일주일에 3~4회 한 시간 정도 실내수영을 하고, 주 4회 저녁 식사 후 40분 정도 산책을 하며 지낸다.

계절마다 남편과 국내 여행을 다니고, 딸과 사위, 손주, 아들과 함께 1년에 두 번 가족여행을 다니며 건강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마무리


암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결코 쉽게 이겨낼 수 있는 병도 아니고, 그렇다고 낙심만 할 병도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음과, 반드시 나아야겠다는 환자 자신의 의지였다. 그리고 그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암 진단을 받은 후 나는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의 체중과 체온, 컨디션, 먹은 음식과 간식, 음료까지 모두 기록했고, 운동량과 수면시간도 빠짐없이 적었다.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매일의 기도도 노트에 남겼고, 어느 순간부터는 감사노트도 작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활을 기록하다 보니 내 건강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기도는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었다. 가족들과 함께한 여행, 그리고 소중한 시간들은 내게 삶에 대한 감사와 행복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마지막 날이 오더라도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 여배우가 “암은 오히려 감사한 병”이라고 했던 말을 늘 기억하며 공감했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 들던 해, 혹시라도 더 나빠지기 전에 가족 모두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가족사진도 남겼다. 갖고 있던 보험의 상속인을 지정하고, 정리할 수 있는 일들은 하나씩 정리했다. 이렇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했다.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치료에 임하되, 주어진 시간 동안 미루지 말고 가족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내길 바란다. 내가 걸어온 이 길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수기공모에 수상한 작품은 현재 교보문고에서 무료로 다운받아볼수있도록 게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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