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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투병기

[암 투병기]34. 암 수술과 항암치료를 마쳤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by 토끼랑께 2021. 6. 26.

대장암으로 S결장 절제술과 12번의 항암치료를 받은 후 나는 치료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는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으니 곧 완쾌될 거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가 끝나자 하루라도 빨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는 성급한 욕심을 부렸었다.

대장암 진단 후 7개월 만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대장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오심과 구토로 밥을 거의 먹지 못하다 보니 몇 개월 만에 체중이 많이 빠지고 체력이 떨어져 기운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항암치료가 끝나도 일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도 공석인 내 자리를 계속 비워둘 수가 없어 하루 나와서 면담을 하자고 했다. 12회 차 항암치료를 앞두고 다니던 회사에 나가 면담 후 사직서에 사인을 했다.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마음이 이상했다. 아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회사에 취직을 하기는 했지만 앞으로 결혼도 시켜야 하고 그동안 아이들 키우느냐 노후준비를 충분히 해놓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내가 암으로 잘못되면 결국 하나도 할 수 없는 일인데도 그때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체력이 약해져 중심을 잃고 넘어져서 다치다.

회사에 다녀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앞마당을 거닐다가 순간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졌는데 하필이면 계단 쪽으로 쓰러졌다. 몸을 제어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그 찰나에 머릿속으로 '나 크게 다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단으로 넘어지면서 한쪽 어깨와 머리를 부딪히고 바닥에 나가떨어졌는데 호흡도 제대로 안되고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마침 집에 있던 아들이, 내가 쓰러지는 것을 마루에서 지켜본 친정엄마의 비명소리에 뛰어나와, 승용차에 싣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평택 성모병원 응급실로 싣고 갔다. 가는 동안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응급실에 도착해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드레싱을 했다. 알코올 솜으로 얼굴을 닦아내던 간호사가 내가 신음소리조차 내질 않자 "아프지 않으세요?" 하고 묻는다. 그제야 겨우 "참을 만해요."라고 대답했다. 사실 항암치료에 비하면 알코올의 따가움은 견딜만했었다.
검사 결과 다행히 골절이 된 곳은 없고 찰과상만 입었다. 흉부사진에 케모포트가 삽입되어있는 것을 보고 의사가 뭐냐고 질문을 했다. 항암치료 중이라고 했더니 정밀검사는 항암 치료하는 병원에 가서 하라고 했다.

12번째 항암치료가 2주 후로 미루어졌다.

2일 후 12번째 항암치료를 하기 위해 원자력병원에 갔다. 주치의가 얼굴 이곳저곳에 붙이고 있는 거즈를 보더니 무슨 일인지 물었다. 2일 전에 넘어져서 응급실 다녀온 이야기를 했더니 바로 머리 CT촬영과 추가 검사를 시작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는데 어깨에 인대가 손상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콧등에 난 상처가 깊으니 바로 성형외과에 가서 치료하라고 했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어야 항암치료를 할 수 있다며 집으로 돌아갔다가 2주 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상처치료를 위한 성형외과 찾기

서울에서 출발을 하며 평택에 있는 성형외과 몇 군데에 전화 문의를 했더니 상처로 인한 치료는 하지 않는다는 대답만 한다.
몇 군데를 전화하던 중 한 곳에서 다친 상처를 치료해주는 성형외과를 소개해줬다. 넘어져서 응급실에 실려갔던 평택 성모병원과는 정반대 위치에 있는 병원이었다. 성형외과에 가서 콧등과 이마 그리고 얼굴과 귀에 난 상처를 치료받았다. 그리고 어깨 다친 곳 치료를 위해 처음 갔던 병원에 가려다가 거리가 멀고 바로 옆에 있는 정형외과에 있기에 그리로 갔다. 처음 응급실에 실려갔던 병원인 평택 성모병원은 2015년 '메르스의 첫 진원지'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곳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날 성형외과 치료 후 어깨 치료를 위해 다시 평택 성모병원에 갔더라면 메르스 첫 환자와 동선이 겹칠 뻔했다.

첫 암 요양을 가게 된 장성 축령산 편백숲

마지막 항암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니 방송에서 연일 메르스 관련 이야기만 나왔다. 특히 평택 성모병원이 '메르스 첫 진원지'라고 해서 그 당시 평택은 길거리에서 사람을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시내에는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데 마음이 불안해서 환경이 좋은 곳으로 요양을 가기로 했다. 마침 지인이 전남 장성에 있는 축령산 편백숲이 건강에 좋다며 머물 펜션까지 소개해 주었다. 남편과 나는 그렇게 장성 축령산 편백숲이 있는 모암마을로 내려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2개월 정도 머물며 지내게 되었다. 편백숲에 있는 동안 건강식을 챙겨 먹으며 산을 열심히 걸어 다녔다. 빨리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밤에는 무릎과 발목관절에 통증으로 잘 걷지도 못하면서 하루에 2시간 씩 걸었던 것 같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한 달 후 검사와 3개월 후 검사에서 S결장을 절제한 대장이 깨끗하고 폐로 전이되어있는 암세포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있다는 결과도 듣게 되었다.

다시 일을 하기 위한 준비

2개월을 지내고 집에 돌아오니 몸에 후유증은 있지만 항암치료를 할 때보다는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 폐에 전이되어있는 암세포가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건강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 곧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여고선배였던 전 직장 상사가 일 년 전 회사를 퇴사하고 사무실을 차렸는데 , 하루는 건강해 보인다며 자신이 운영하는 사무실에 나와서 다시 일해보라고 권유했다. 암진단금을 받은 돈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경제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연말까지만 더 쉬고 새해부터 나가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선배 사무실에 나가게 되면 필요할듯해서 여성회관 문화센터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자격증반 수업을 받고 난 후 시험을 봐서 합격도 했다.

평택시 여성합창단 입단

마지막 수업을 받고 나오던 날 평택시 여성합창단에서 단원을 모집하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합창단원들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사진을 보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했다. 오디션을 보러 가던 날 약속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안에서 연습하는 합창단원들의 노랫소리가 너무 아름다웠다. 가곡 한곡을 연습해서 오라고 했기에 열심히 연습을 했는데 막상 합창단들 노래소리를 들으니 내실력으로는 어림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 괜히 왔다는 후회도 들었다. 그냥 돌아갈까 하는데 문이 열리며 들어오라고 했다. 합창단원들 중 몇 사람이 가지 않고 나의 오디션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들 앞에 설 때 긴장을 잘하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너무 긴장해 어떻게 노래를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연락을 줄 테니 가서 기다리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불합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그날 저녁에 다음 주부터 연습하러 나오라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폐 전이로 인한 수술 결정

합창단에 나가서 노래 연습을 하면서 새로운 생활에 흥분도 되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합창단에 들어간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곧 연말 파티가 있다며 참석하라고  드레스코드까지 정해주었다. 나는 연말파티에 어떻게 입고 갈지 고민도 해보며 연말 파티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연말 파티를 1주일 남기고 정기검사를 받으러 원자력병원에 갔다.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담당의사 선생님이 폐에 있던 암이 사이즈가 커지고 주변에 몇 개의 암이 더 발견되었다며 양쪽 폐를 수술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흉부외과에 협진 요청을 했다. 흉부외과 담당의사 선생님은 양쪽 폐를 흉강경으로 수술을 할 거라는 안내와 메르스로 인해 밀려있던 수술을 요즘 한꺼번에 하느냐 일정이 없다며 한 달 후인 새해 1월에 폐 수술 일정을 잡아줬다.
그렇게 첫 번째 암수술 후 항암치료를 마친 나의 사회복귀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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